경흥(憬興)은 신라 신문왕 때 국사(國師)였다. 경주 삼랑사(三郞寺)에 머물렀다. 병을 오래 앓았는데 잘 낫지 않았다. 한 비구니가 찾아와 뵙기를 청했다. 자리에 누운 경흥에게 그녀가 말했다. "스님께서 큰 법을 깨달았다고는 하지만 사대(四大)를 합쳐 몸이 된 것이니 어찌 병이 없겠습니까? 병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는데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에서 생겨납니다. 첫째는 신병(身病)입니다. 풍황담열(風黃痰熱), 즉 풍이나 황달, 담과 열이 나는 것입니다. 둘째는 심병(心病)으로 전광혼란(顚狂昏亂) 즉 미치거나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이지요. 셋째는 객병(客病)입니다. 칼이나 몽둥이에 다치는 것이니, 동작으로 과로하여 생깁니다. 넷째는 구유병(俱有病)입니다. 기갈한서(飢渴寒暑)와 고락우희(苦樂憂喜)가 그것이지요. 그 나머지는 서로 맞물려 어느 하나가 조화를 잃으면 온갖 병이 한꺼번에 일어납니다. 지금 스님의 병은 약으로는 치료할 수가 없고, 재미나고 우스운 일을 구경해야만 나을 것입니다."
그러더니 그녀는 11가지 탈을 번갈아 쓰며 희한한 춤을 췄다. 그 우스꽝스러운 광경에 경흥을 포함해 다들 턱이 빠지라고 웃는 동안 병이 거짓말처럼 나았다. 잠시 뒤 그녀는 삼랑사 남쪽의 남화사(南花寺) 불전으로 들어가고는 홀연 사라졌다. 그녀가 짚었던 대지팡이가 절의 11면 관음상 앞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해동고승전'에 나온다.
사대란 불교에서 만물을 구성하는 네 가지 원소로 꼽는 지수화풍을 가리킨다. 이 중 어느 하나에 문제가 발생하면 신병, 심병, 객병, 구유병의 사병(四病)이 생긴다. 신체가 조화를 잃어 신병이 들고, 마음이 균형을 놓치면 심병 이 된다. 몸 밖의 물건에 다쳐서 객병이 되고, 모든 것이 뒤섞여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구유병이 온다.
도를 깨달은 경흥 국사 같은 큰 스님도 육신의 질병만은 어쩌지 못했다. 이를 딱히 본 관음보살이 비구니로 변신해 11면 탈춤으로 묵은 병을 말끔히 낫게 해주었다. 중생이 다 아프다. 정신없이 웃다 보면 병이 낫는 해원(解寃)의 탈춤을 어디서 다시 만나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