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22년(1798) 7월 27일 충청관찰사 이태영(李泰永)이 정조에게 장계를 올려 매년 가을마다 실시해온 마병(馬兵) 선발 시험의 폐지를 청원했다. 혹심한 재해로 농사를 망쳐 생계가 어려운 데 시험장 설치 비용도 만만치 않고, 응시하는 백성들이 양식을 싸 오기도 힘든 상황이라 올해에 한해 시험을 폐지해 달라는 것이었다.
정조가 하교했다. "흉년에 백성을 살피는 일은 크고 작은 것 따질 것 없이 성가시게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백성을 귀찮게 할 일은 일절 하지 말라. 그래야 '끓는 물을 퍼냈다가 다시 부어 끓는 것을 멈추게 한다(揚湯止沸)'는 나무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성을 성가시게 하지 않는 것이 부역을 면제해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 가뜩이나 먹고살기 힘든 판에 도와준다면서 일이나 제도를 만들어 나라가 백성을 더 괴롭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글 속의 양탕지비는 한(漢)나라 매승(枚乘)이 '오왕에게 간하여 올린 글(上書諫吳王)'에서 "끓는 물을 식히려 할 때 한 사람이 불을 때는데 백 사람이 물을 퍼냈다가 다시 담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장작을 빼서 불을 그치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欲湯之滄, 一人炊之, 百人揚之, 無益也. 不如絶薪止火而已)"라고 한 데서 나왔다.
'역대사선(歷代史選)' 동한(東漢) 효령황제(孝靈皇帝) 조에서 "끓는 물을 퍼냈다가 다시 부어 끓는 것을 그치게 하는 것은 땔나무를 치우는 것만 못하다(揚湯止沸, 莫若去薪)"고 하고, 이와 나란히 "종기를 터뜨리는 것이 아프기는 해도, 안으로 곪는 것보다 낫다(潰癰雖痛, 勝於內食)"란 말을 인용한 것도 같은 뜻이다. 문제가 있으면 발본색원해서 근원적으로 해결해야지 임시방편으로 돌려막기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숙종 33년(1707) 11월 9일 지평(持平) 이대성(李大成)이 상소를 올려 임금이 붕당(朋黨)을 미워한다면서 막아 끊지 못하고 도리어 조장하니 이러면서 당쟁의 폐해를 막겠다는 것은 양탕지비요, 포신구화(抱薪救火), 즉 섶을 들고 불을 끄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간언했다. 펄펄 끓는 물은 장작을 빼야지 국자로 퍼서는 식힐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