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시 두레 2013. 9. 3.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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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하루종일,

         내를 따라 내려가다보면 그 저수지가 나오네

         내 눈 속엔 오리떼가 헤매고 있네

         내 머릿속엔 손바닥만한 고기들이

         바닥에서 무겁게 헤엄치고 있네

 

         물결들만 없었다면, 나는 그것이

         한없이 깊은 거울인 줄 알았을 거네

         세상에, 속까지 다 보여주는 거울이 있다고

         믿었을 거네

 

         거꾸로 박혀 있는 어두운 산들이

         돌을 받아먹고 괴로워하는 저녁의 저수지

 

         바닥까지 간 돌은 상처와 같아

         곧 진흙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섞이게 되네

 

         /이윤학

 

   산골짜기 옹달샘에서 생겨난 어린 물은 반짝이며, 깔깔대며 흘러가 내(川)를 이룬다. 내가 변성기를 거치며 샛강이 되면 목소리엔 비닐 쓰레기도 엉킨다. 몸에 농약 물도 좀 섞이는 청장년을 지나니 이내 말이 없는 중년에 닿는다. 내뱉는 말보다 속으로 삼키는 말이 더 많은 저수지 같은 중년.

 

   애초에 없는 듯, 깨우침인 듯 속까지 텅 빈 거울 같은 저수지는 한없이 평화로우나 자세히 보면 '어두운 산들이' '거꾸로 박혀' 있으며 그 산들은 무심히 던진 돌을 받아먹으며 진저리친다. 우리의 중년은 얼마나 많은, 던져진 돌에 상처받으며 살았는가. 오, 게다가 상처는 아무는 것이 아니라 '진흙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삶에 섞이게 된다니! 그 수면의 찬란한 반짝임과 오리떼 노니는 평화가 실은 깊은 상처로 이루어진 거짓의 풍경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우리의 아픈 역사가 '거꾸로 박힌' 수많은 저수지가 거리를 헤매며 고통을 반사하고 있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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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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