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75.130725 육신의 안일(安逸)보다 구원을 바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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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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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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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질병은
하느님께 죄를 지은 결과로 여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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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성서학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도 여느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은 사고방식에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풀이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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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해석은
정확한 것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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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 죄의 결과라는 사실은
성경 전체의 관점이 아니며,
예수님께서
이러한 관점을 가지셨을 리도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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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자면,
제자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두고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요한 9,2)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요한 9,3) 하고 말씀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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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탕한 생활로 몸을 망치는 경우처럼
죄와 질병이 직접 관련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질병과 죄 사이에
필수적인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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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찌하여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에게
‘너는 걸을 수 있다.’ 하지 않으시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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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의 육체적인 치유보다도
죄의 용서에 관심을 더 가지신 점을 보여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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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은
육체적인 질병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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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관심사는
우리의 구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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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 병자가 걷게 된 것은
그가 죄를 용서받아 구원된 사실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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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어떠하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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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함과 풍요로움,
편안함을 주님께 청하면서도
정작 예수님께서 가장 큰 관심을 두고 계시는
우리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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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