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54.130617 깨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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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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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되찾고
기뻐하는 목자의 비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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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시대에는
양 떼들을 마을 공동의 소유로 키우며
서너 명의 목자들이 관리했기 때문에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놓아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으러 떠날 수가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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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지방에서
양이 길을 잃는 것은 흔한 일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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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목초지는
마치 사람의 등뼈 모습처럼
좁고 길게 뻗친 고원 지대인데,
건기에는
이런 곳에서 양들이 풀을 뜯어 먹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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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양들이 이곳을 돌아다니다가
벼랑 아래로 떨어질 위험이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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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복음 안에는
‘기뻐한다.’
는 표현이 세 번이나 나오는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기쁨이라는 말을
반복하시며 쓰시느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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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있을지도 모르는 양을
다시 구하였으니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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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 나아가
‘기쁨’
이라는 표현의
다른 면을 생각해 보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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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들의 회개에
하느님께서
이토록 기뻐하시는 모습 뒤에는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하느님께서
느끼시는 깊은 슬픔이 담겨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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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우리 사이가 갈라지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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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마치 이산가족이 상봉할 때
흘리는 뜨거운 기쁨의 눈물 뒤에는
그동안 서로 만날 수 없었던 이별의 슬픔이
담겨 있는 것과 같은 이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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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회개를 두고 기뻐하시는 반면,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슬퍼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함께 떠올려 보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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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이전에 깊은 슬픔이
있었음을 깨달아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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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