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59.130318 의롭게 사는 길 . . .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 . 바리사이는 나무랄 데 없는 신앙생활을 하였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자신에 대해 만족하며 죄인과 다르게 살 수 있었음에 하느님께 감사하였답니다. . 그 반면, 세리는 언제나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았고, 그러한 자신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였답니다. .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가 아닌 세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답니다. .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바리사이가 의인이랍니다. . 그런데 어찌하여 세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여기시는 것일까? . . . 한 유다 청년이 율법 학자에게 자랑하였답니다. , “선생님, 저는 『탈무드』를 세 번이나 읽었습니다.” . 사실 유다교 경전인 『탈무드』는 그 분량이 방대하기 때문에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랍니다. . 그런데 율법 학자는 이에 감탄하지 않은 채 다음과 같이 물었답니다. . “그대가 『탈무드』를 세 번이나 읽었다고? 그러면 『탈무드』는 그대를 몇 번이나 읽었는가?” . 청년은 이 말에 크게 깨닫고 돌아갔답니다. . . . 바리사이가 기도한 대로 강도짓도, 불의도, 간음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그를 의인이라 할 수 없답니다. . 일주일에 단식을 두 번이나 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쳤다고만 해서 의로운 것도 아니랍니다. . 의로움이란 하느님께서 그 사람의 삶을 헤아리시고 변화시키시도록 자기 자신을 그분께 겸손하게 내어 드리는 태도에서 나온답니다. . . .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위대한 일을 하여도 의인이 될 수 없는 것이랍니다. . 하느님 없이 스스로 의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랍니다. . . .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해야 한답니다. . 나는? 외통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