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모든 사물(事物)들은 말을 삼키고 있다. 골짜기는 얼었고, 나무들은 앙상하고, 숲은 침침하다. 하늘의 빛도 흐려서 한낮의 그림자마저도 흐리다. 대지는 잠든 듯하다. 일체가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겨울은 죽음이 아니고 마비가 아니다. 깊은 내면(內面)을 향하여 자기만의 언어로 기도하고 반성하고 수행(修行)한다. 그리고 봄이면 그 언어들을 내어 뱉는다.
'굳은 얼굴'로 자기를 굳게 걸어 잠그고 자기 신념에 빠진 사람을 볼 때가 있다. 물론 그러한 국가나 사회도 있다. 그 앞에서는 아무런 말도 필요 없다. '말을 삼키'고 '바람 불고 눈발 날리'는 것이나 바라볼 뿐이다. 그것은 죽음의 계절이다. 이 시의 제목처럼 '무의미'와 마비의 시간이다.
겨울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무런 '생산'이 없을지언정 반성과 기도와 수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낭비되는 시간으로 아는 '생산주의자'에게는 희망이 없다. 그런 의미로 문학과 예술은 '겨울의 언어'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