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의 별

외통인생 2008. 6. 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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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의 별

1534.000922 이마의 별

누구나 자기 생을 돌아보면서 과거의 한 때, 한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그 때는 그렇게 하기를 참 잘했구나 하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그 때가 나의 운명을 가르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하여 잘못 선택된 그때의 자기를 심히 후회하기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운명. 과연 운명이란 외부적 작용인가 아니면 자기의 의지로 개척하는 몸부림의 필연적 결과인가.

내 몸에는 무수히 많은 상처의 자국이 이제까지 살아온 내 생의 궤적을 재생하는 양, 남아서 사라지지 않으니 이는 나 자신이요 내 삶의 조각품이다. 그 많은 조각 중에 별처럼 보석처럼 새겨진 이마 한가운데 상흔은 이따금 내게 이상한 생각을 갖게 하고, 생활의 지표구실 같은 것도 하고 있다.

이 상처는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되는 경고의 표지요 항상 보고 깨달으라는 듯이 가장 잘 보이는 곳, 가장 자주 보는 곳, 그러면서 내 전체와 조화를 생각해야 하는 그런 위치인 면상, 하고도 이마 위 한 가운데에, 어느 한 쪽의 기울임도 없이 균형 잡아 자리하고 있다.

생각해본다. 그 때에 내가 지극히 짧은 순간에 그 자리에, 그 자세로 있었던 것, 또 그 넓은 공간에서 이마에 날아오는 병의 어느 면이 반드시 지금 이 상처 자리에 닿을 수 있게 있 었다는 것, 기묘하고도 신통해야 할 그런 상흔(傷痕)인 것이다. 수학적으로 풀어보고도 싶고 물리적으로 따져보고도 싶다. 어떻게 하든, 이는 고도의 논리를 요구하는, 확률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으로는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끝이 1mm 도안되는 활촉으로서 고정되어 있는 표적을 고정되어 있는 자세로서 쏘는, 비교적 의도하는 대로 쏘아서 날아가는 활이라는 발사기로 쏘는, 꿰뚫는 가늠으로 쏘아도, 한가운데를 맞추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테다. 하물며 삼백육십 도를 돌 수 있고 위아래로 삼백육십 도를 움직이는 표적인 내 이마의 한가운데를 맞혔다.

그 것도 상대가 움직이는 자세의 팔로 던져서 맞혔으니, 화살에 해당하는 던져진 병의 길이가 10cm 도 넘고 너비도 4-5cm가 넘는 병이 지금 내 이마의 한가운데를 맞췄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묘하다.

신작로 가로변의 두 집 건너 윗집에 사는 ‘경구’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와 단짝이여서 쌍둥이 모양으로 붙어 어울리면서 아주 죽이 잘 맞는 동무다.

이른 봄에 눈이 녹고 땅위의 물기가 잦아들어서 흙이 신발에 묻지도 않고 먼지도 나지 않는, 촉촉한 땅인데 그 습기를 보존이라도 하고 싶은 듯 잔뜩 흐린 오후였다.

주리틀리듯 발광하던 나와 '경구'는 밖으로 무작정 나갔다. 아랫집 ‘정환’이네 담밖에 쌓아 놓은 진흙더미 위에 박속이 허옇게 널려있는 것이 보였다. 장난기가 돋은 나는 뛰어 올라가서 하얀 박속을 뜯어서 언덕 밑으로 던지며 놀이의 시작을 알렸다.

피하기도하고 더러는 몸에 맞기도 하는 '경구'는 던질 물건인 박속이 없는 위치인 언덕 아래에서 내가 던진 박속을 주어서 되 던져야하는 형편이 되었으니 불리한 위치임에도 밑에서 잘도 대응했다.

점점 덩어리가 커지고 급기야는 박속 전부를 통째로 들어 던지는 확전(?)상태가 되었다. 하얀 박속 한 개가 경구의 가슴팍에 묵직하게 닿았고 그 박속은 그대로 굴러 떨어졌다. 경구가 그 박속을 되던지기에는 너무 무겁고 컸으며 더구나 위를 향해서 던지는데 느리고 힘도 없어 되 집어 던질 수는 없어 보였다.

내가 재차 던지려고 돌아서려는 순간 불이 번쩍 했다. 따뜻한 물기가 손바닥에 만져졌다. 손을 보자마자 뇌성같은 울음이 터졌다.

이웃과 어머니가 달려 왔지만 경구는 줄행랑을 쳤고 내 앞에 있는 것은 깨진 병 쪼가리뿐이었다. 순박하신 우리 어머니. 아들의 면상 한복판에서 나는 선혈을, 상처를 보시고 얼마나 놀라셨을까? 긴 한숨과 함께 치마폭으로 내 얼굴을 감싸고 꼭꼭 안아주셨다.

서서히 의원 집 문을 나섰다. 보실 때마다 이마의 흉터를 걱정하시며 측은해하시다가 때로는 나 몰래 눈물도 만이 흘리셨다. 어머니 생각에도 심상치 않은 징후로 점지하시는 듯 했다. 속설에 의했건 느낌에 의했건 간에 보통의 일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이후 내 생활은 이마의 별 같은 상처로 해서 그랬는지, 긴장은 한 치도 풀어지지 안했다. 그 후 나는 많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됐지만 그때마다 이마의 이 별이 오히려 나를 수호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대가는 인고 그것이다.

증명이라도 하듯이 할머니도 늘그막에 별을 달으셨다. 솜을 타시러 읍내로 가셔서 솜틀기계에 다치셨는데 그 자리가 나하고 똑 같은 자리이니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기막힌 일치점이다.

그 시절에는 계목도리를 길게 해서 목에 감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할머니는 무슨 일이든지 적극적으로 몸을 쓰시는 분인데, 아마도 일직 홀로 되시어 매사를 손수 하셔야 만이 직성이 풀리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였을 것이다.

솜틀 집주인이 다 알아서 해 주련만, 할머니는 주인 몫까지를 할 천사 같은 분인지라, 솜을 들어 솜틀 위에 집어넣는 일을 주인이 한 눈을 파는 사이에 하셨다. 바로 그 때 긴 목도리는 바로 밑의 피대(皮帶)에 감겨서 큰 바퀴를 한 바퀴 도는 사이에 할머니 머리는 당겨지는 목도리에서 벗어날 수 없이 그만 밑으로 끌려 내려졌다. 순간에 이마가 기계의 통에 닿고 말았다. 천만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번한 큰 사고였다.

손자와 할머니는 거울 앞에 앉아서 누구의 흉이 더 바르게 예쁘게 새겨졌는지를 겨룰 판이 됐다. 할머니도 나도, 같이 평탄한 길을 걸어서 살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 별이 그나마 목숨을 이어준 액땜이라면 위안이 될까.

헌데 새겨진 조각이 육체에 머물고 있으니 이 다음에 무엇으로 견주어 볼까. 뼈에도 자국이 있다면 이 다음에, 먼 훗날에, 할머니 앞에 나가서 우선 안기고, 이마의 자국을 견주어 볼까나! /외통-

만족할 줄 아는 사람만이 행복을 아는 사람이다.

즐거울 때는 그다음을 생각하라(밝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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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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