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과제

외통인생 2008. 6. 24.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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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과제

1628.001213 방학과제

낱말대로 푼다면 숙제는 두고 풀어야 할 문제고 집에서 해야 할 일, 또 과제는 부과된 문제요 때를 정함이 없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이르는 말로 풀어볼 수 있다.

 

이렇게 간추려서 글자가 뜻하는 대로 풀이한다면 시비를 할까 두렵다. 그런데, 이 숙제가 어린이의 방학숙제로부터 어른들의 일상은 물론이려니와 심지어 정치인의 앞일을 얘기할 때도 사용되는 광범위 용어가 돼 버렸다. 이렇듯 말은 그 시대의 상황과 소속한 사람들의 정서에 따라서 바뀌고 애용돼도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지만 곳 익숙해지는 것이다.

 

 말이나 글은 우리 인간의 의사와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절대적으로 미흡하다. 이는 낱말 하나를 놓고 줄줄이 다른 뜻을 달아 내놓고 있는, 나라말마다 펴낸 사전이 실증하고 있다. 만약 우리의 감정을 적합하게 표현하는, 소통되는 낱말이 따로 따로 있어서 서로 넘나들지 않는다면 한결 우리사회가 밝아질 것이며 완벽해질 것이지만 아직은 그렇지 못하여 미완의 숙제로 되어있다. 지구상의 모든 모래알을 각각 인간의 순간적 감정 하나씩을 표현해서 낱말을 만든다 해도 모래가 모자랄 우리들의 의사와 감정이다.

 

왜 숙제를 이렇게 장황히 늘어놓느냐하면 숙제이건 과제이건 그 일을 내가 할일이 명백하면 내 머리와 내 몸과 내 오감을 동원해서 걸러지면 족한 것인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잔꾀를 부린 지난 일을 생각하면 입술이 댕겨지면서 광대뼈가 불거져 오르고 눈가에 잔주름이 겹치는, 얼굴을 변형시킬 정도의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통용되는 말로 웃음이 절로 난다.

 

여름 방학이 돌아왔다. 뜻이 통하는 친구와 의기투합해서 우리 집 건너 방에다가 책 보따리를 풀었다. 이 방학과제는 하루에 한 페이지 씩 해야 되는 것도 잘 아는 우리는 필통의 연필을 번갈아 가며 하루는 굵은 연필로, 다음 날 자의 쪽은 가늘게 써지는 연필로, 또 그 다음날의 것은 이제가지 쓰지 않던 다른 연필로 바꾸어서, 예비연필을 죄다 동원해서 써도 한 달을 채우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배를 깔고 엎드려서 칠하고, 쪼그리고 앉아서 쓰고, 무릎 꿇고 숙이며 지우고,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는 것처럼 덤벼들어서 이틀 만에 끝을 내긴했지만 공작물이나 나팔꽃의 일기는 짜증스럽게도 하루 이틀에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이것도 적당히 꾸며서 만들거나 아예 빼먹을 작정으로 그냥 넘기려했다. 이후 우리는 긴 방학 동안을 산과 들을 헤매며 숙제에서 해방된 생활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숙제장의 제출이 임박했다. 첫 시간에 이 방학과제, 숙제장 속의 매 쪽에 써야 할 한 달 동안의 날씨(기상)를 급히 적느라 법석이다. 하루 만에 해치운 과제는 들통이 나고 우리의 고개는 숙여져야했다.

 

인생은 댕겨서 살 수 없는 것이다. 그 날의 것은 그 날의 것으로 충만하게 살고 내일을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내일은 그 날에 가서 온 힘을 다하면 족할 것일진대 우리의 욕심이 이를 자제하지 못함은 인간비극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약속한 낱말들에 얽매여서, 일을 당겨서 하고 또 당겨서해야만 인류의 장래가 풍요로워지는 것처럼 여기니 답답하다.

 

이렇게, 당겨서 해야 반드시 풍요로워질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당겨서 한 숙제가 옳았는지 지금에 와서 웃음이 나면서도 생각할수록 머리 아프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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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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