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

외통인생 2008. 6. 2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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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001214 구슬

구슬이란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가벼워지고 맑아진다. 그 말뜻이 옥이라는 것으로는 좀 모자라는 것 같고, 그래서 더 붙인다면 구르는 뜻까지도 보태서 좋을 것 같다.

옥이라는 것으로 보는 구슬은 나와의 인연은 별로 없다. 어릴 때 구슬치기를 해본 적이 더러 있었던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다른 애들처럼 구슬치기에 미쳐서 끼도 거르는 정도는 아니었다. 집중력에 문제가 있었든지 아니면 숙련이 덜 돼서인지 구슬치기에서 언제나 내 것만큼만 호주머니에 남아있을 정도였지, 많이 따서 애들끼리 다른 물건과 바꿔가질 정도로 능숙하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투기나 모험의 기질은 없었나 보다.

작은 동그라미를 땅바닥에 긋고 그 안에 각자의 구슬을 하나씩 대 모으고 가위바위보로 선후를 정하고, 금밖에 서서 자기 구슬로 때려 금 밖으로 나가면 따먹는 것인데, 구슬끼리 맞아서 나는 소리와 맞는 순간의 쾌감은 헤아리기 어려운 기쁨의 극치다. 비록 내 구슬을 잃는데도 이 소리는 싫지 않다. 또 때려서 맞춘 애가 튀겨 구르는 구슬의 모양을 바라보며 느끼는 기분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이 재미는 당구의 재미를 훨씬 능가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모리배(?)가 주머니가 터질 듯 구슬을 넣고 걸을 때 마찰음이다. 두 박자로 지극히 바르게 소리 내면서 걷는 모양과 소리가 우리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이미 다른 친구들이 짜고 이 구슬치기를 안 하기로 담합 했기 때문이다. 담합의 불공정 시비가 오늘에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의 심성과 무관하지 않은 원초적인 것이 증명되는 계기다. 그는 모름지기 많은 구슬을 따기 위해서 구슬치기가 아닌, 구슬 내기의 한 놀이인 주먹 안 구슬 숫자 맞추기를 다른 반에 끼어들어서 하기를 시도할 것이다. 그때까지 구슬 반주는 계속될 것이다.

이제 그의 호주머니 안에 있는 많은 구슬은 우리 반 친구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돌덩어리에 불과하다. 몇 시간 사이에 똑같은 구슬이 가치의 도치(倒値)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듯 구슬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는데도 변화된 인간 심리가 구슬의 가치를 변화시킴을 시장 논리로 터득하는 데에 이토록 오랜 시간을 보낸, 내 아둔함을 실토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안목을 더 넓게 더 깊게 더 높게 한다면 그까짓 세상의 보배로운 갖가지 구슬들을 무가치로 할 능력이 있음을 깨친다. 그러나 구슬을 호주머니가 터지도록 넣고 다니는 그 애의 경우는 구슬 속에서 이 세상 모두를 발견했을 것이다.

구슬은 오묘하다. 비록 눈깔사탕 크기의 동그란 것이지만 그 생김은 무한히 확대되는 크기를 상상하고 반대로 무한히 작아지는 상상도 할 수 있다. 실제가 그렇다. 달걀 속 노른자, 탁구공, 정구공, 당구공, 볼링공, 축구공, 배구공, 농구공, 달, 지구, 태양, 별, 들과 같이 한없이 커 가는 둥근 것이 바로 구슬과 같은 모양이다. 반대로 각종 구(球)형 베어링, 식물의 열매와 씨앗, 동물의 알, 세포의 원형질 등, 내가 모르는 극한까지 구형으로 작아져서 한점으로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아 심한 말을 해볼 용기를 갖게 된다. 이 세상 만물의 완성품은 둥글다. 둥글지 않은 것은 미완성이므로 앞으로 장구한 세월 동안 둥글게 변해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생성 원리에서도 알 수 있다. 나무는 어떠한가, 나무가 아직은 잎과 줄기가 삐죽이 생겼지만, 나이테가 있다는 것은 모나지 않는, 모날 수 없는 절대적 섭리를 증명해 준다. 만약 일정 기간 생존과 번영과 완성을 위해서 모나는 것이 요건이라면 모든 생물은 실 같거나 칼 같거나, 해야 옳을 것이다. 물론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면 사람도 공같이 될 것인가.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창조주 몫이니까.

동그라미는 있는 그것이다. 중심축을 기준으로 회전 확대함으로써 구슬( 球)이 되고 우주가 되며, 무한 축소함으로써 허무가 되는, 괴이한 생각을 해본다.

진리가 무엇인지, 그 길을 잠시 생각해 본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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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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