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궤적 2008. 8. 2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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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6.020217 약

기도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빈다. 건강을 되찾는 날에 춤출 것이고 그날에 새로나 다시는 구렁에 빠지지 말자고!

온전히 섭리에 맡겨 살아가리라고 늘 마음 다지면서도 그 다짐을 의심한다. 오늘 하루조차 제대로 못살 것 같다. 오늘만은 제대로 살자는, 별수 없는 내 패배의 변이라고 할지, 아니면 절대자에 대한 외경(畏敬)에 있다고 할지 모르겠다. 더는 내려갈 수 없는 원추(圓錐)의 바닥에서, 그 원추의 뿔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 무슨 선택이 필요하며 이루지 못한 데 대한 변(辯)이 있을 수 있나 싶다. 밑바닥을 기어 온 나를 되돌아보아 부끄럽고, 이대로 미동(微動) 못 하는 말뚝이 되고 싶다.

‘하 초(下焦)가 습하고 소변이 시원치 않고…’ 심문 하단의 약 광고를 매일 유심히 바라보는 내 심기가 우울하기만 하다.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기도 하고 날 부르는 소리로 들리기도 하고, 날 조롱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일터를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인 이즈음의 처절한 생존경쟁의 틈바구니에서 그래도 날 부지하고 기회를 엿보려면 조그마한 틈과 빌미도 주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비록 소극적 태도일망정 내 이런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난 할 방법 하나를 택하기로 했다. 그것은 간단하면서도 완벽한 방법이다. 서울로 올라가는 사람에게 부탁할 수도 있고 이곳의 한의사에게 같은 유의 처방을 받아서 먹을 수도 있지만, 다 같이 신원이 노출되고 말 많은 이 고장에서 허약한 내 체질이 구설에 오를 것 같은 염려가 있어서 한길 건너편의 ‘국(菊)생’ 집의 주소를 빌려서 편지를 띄웠다.

있는 증상을 자세하게 밝히고 내가 의원 앞에서 진맥을 받는 것처럼 잦은 편지로 문진(問診)하는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이런 뜻을 주문했더니 쾌히 응하는 회신이 있어서 원격 진단이 이루어졌다.

‘편지가 오면 도장을 찍어주고 소포 뭉치를 받아놓았다가 제게 기별만 해 주십시오’라는 내 간단한 주문에 ‘국 씨’ 부부는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기꺼이 들어주었다.

앞으로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소박한 인간상의 표상으로 잡힐 토박이 인심을 맛보고 있다. 부부는 작은 집에서 남매를 기르며 복잡한 세상사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고 그들이 물려받은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생활 태도는 변화무쌍한 나의 부랑(浮浪)형과 대조된다. 그런 그들은 적이 나를 부럽게 했다. 그들의 문맹이 오히려 그들을 행복으로 인도하는 역설적 삶을 웅변하는 것 같다.

이 부부는 세상을 모르는 천사의 삶을 살고 있다.

가끔 ‘내 밖’의 ‘김천동’을 지날 때 빨간 벽돌로 지은 성당의 문설주에 새긴 까만 글씨가 날 질책하는 경구(警句)로 비쳤다. 그런 성당 앞을 지날 때 고개를 돌리며 지나가곤 했다. 그것은 아마도 나의 죄를 참회의 울부짖음으로, 낫기를 바라기는커녕 완벽의 조건에서 다가가려는 오만과 그 기회를 만들고자 몸부림치는 나의 교활한 짓인 것 같아서 차라리 성당을 외면하는지도 모른다. 숫제 아무것도 모르는 ‘국 씨’ 부부의 깨끗한 삶이 당당하게 돋아 보이며 날 하잘것없는 쓰레기로 만들어서 내동댕이치는 것이다.

아무렴. 완벽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 길로 발을 옮기는 내 발걸음이 야속하다. 죄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내가 스스로 구하고자 땜질하는 약방문, 진정으로 의식의 병도 고칠 수 있을지조차 몰라서 헤매는 나에게 신의 손길은 멀리에 있는 것인가?

‘국 씨’거나 그 부인이 살며시 문 앞에 와서 내게 그들의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 난 천사의 부름으로 알고 달려가서 그때마다 간절히,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성당의 붉은 벽돌집이나마 그리며 서울에서 붙여온 약을 두 손으로 받으며 기도한다. ‘방황하는 이 불쌍한 영혼을 붙들어 주소서! 그리하여 떳떳한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소서!’ 아무도 모르게 받아 든 약봉지는 그냥 약이 아니라 그 순간부터 내 영혼의 양식이 되고 있었다.

난 어느새 심신의 모든 기능을 되찾고 있었다.

육신의 삶은 이승을 떠나기 전엔 인간 질서의 틀에서 맴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도 호적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가호적(假戶籍)이란 법적 한계를 감안(勘案), 나 홀로 뿌리를 마련하려고 부모님의 생존을 잠정 부정한 짓, 심정적으로 절대로 불가능한 짓을 서슴없이 자행한 ‘사망(死亡) 기정(旣定)’은 나의 차디찬 비정(非情)을 기록으로 남겼다. 날 떠나보낸 부모님의 마음에 티끌만큼이나마 보답했던들 생각이나마 할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하면서 마음이 무겁다. 언제나 같이, 난 냉정하다. 설령 ‘가 호적’일지라도 어떻게 부모님을 돌아가신 것으로 할 엄두가 났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드는 대목이다. 부모님이 살아 계신 대서 무슨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요, 등재(登載)되지 않는 것도 아님에도, 현실에 충실한 것은 나대로의 차가운 면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어서 이런 점의 내가 스스로 얄밉다.

약을 받으러 갈 때마다 부모님의 환상으로 변하는 ‘국씨’ 부부, 아울러 성당의 빨간 벽돌집이 그들 부부의 배경에 뚜렷이 드러나는 환상의 약봉수수(藥封授受) 의식은 나의 정신활동의 일상으로 되어서, 그나마 부모님을 뵙고 신에게 감사하는 것이다.

약(藥)은 인간 생육의 필수품이 아니라 악(惡)에서 울어 나는 원초적(原初的) 급부(給付)이니 악을 행하지 않으면 약은 의미가 없는 한낱 모래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거꾸로, 일상의 생활이 섭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병은 자연 치유된다는 굳은 믿음으로 이어진다. 벽에 부닥친 나의 고민거리가 바른 생활에서 이탈했던 과거 한때의 거증(擧證)이 되어 되돌아왔다는 데 대하여 신의 섭리를 엄숙히 받아들이며 감사하고 있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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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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