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소레담

외통넋두리 2008. 9. 2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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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소레담

5498.030114 멘소레담

약통 뚜껑을 열고서 자주 쓰는 소독약을 뒤지다가 가장자리나 모서리의 색갈이 바래서 아예 지워진 종이 갑, 군데군데 닳아서 구멍이 난 작은 종이 갑이 눈에 들었다.

그 속에는 내 엄지와 장지를 말아서 쥐면 딱 찰만한 동그란 양은 통, 부드러운 연보라색 바탕 위에 천사 같은 간호사에게 예쁜 모자를 씌워 놓은 그림이 있는, 볼록한 뚜껑이 씌워진 ‘멘소레담’이 커다랗게 내 눈에 들더니, 모자가 더욱 선명하게 보이며 내 눈길을 끈다.

소독약 찾는 걸 미루고 '멘소레담'통을 가만히 집어 들었다. 한동안 잊었던 그 일이 먹구름처럼 피어 가슴을 덮는다.

나는 아내 몰래 이 종이상자를 자주 들치곤 하는데, 굳이 무슨 약이 절실하게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무심코 ‘희’가 보고 싶을 때마다 제일 만만한 소독약을 핑계 삼아 이 약통을 끄집어낸다.

쓸모없는 손톱 가시랭이를 뜯어낸 자국에 바르는 게 고작인데, 어떤 때는 손톱가시랭이가 불편을 주는 일이 없어도 일부러 찾아내서 뜯고는 이 약통을 연다.

나는 ‘멘소레담’의 뚜껑을 열고 늘 하든대로 그 속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면서 잠시 한숨을 내쉬며 ‘희’의 얼굴을 그렸다.

거기에 ‘희’의 손가락 자국이 남아있고 ‘희’의 지문이 생생히 보였다. 그 작은 통속에 ‘희’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고 눈물방울이 담겨져 있었다.

‘멘소레담’통 안에는 오목하게 패인 반투명의 약이 언제나 그대로 담겨져서 그 위에 ‘희’의 얼굴을 담아냈다.

‘ 희’는 이 ‘멘소레담’을 가지고 어미의 육신의 병을 고쳤고 제 어미의 마음의 병을 고쳤는데, 어미와 아비는 ‘희’의 잠을 깨우지 못했으니 이것이 나를 찢어 내는 것이다.

‘ 희’는 잠에서 영영 깨어니지 못했으나 깨어있을 어느 날 천사의 그림 속으로 이미 파고들었고, 그로 인해서 지금은 천사 같은 간호사의 그림 속에서나마 남아서 나와 이야기하는 것이다.

늘 배 아파서 배를 깔고 굴리던 엄마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배를 움켜쥔 엄마의 손을 젖히고, 언제 찾아왔는지 모르는 이 ‘멘소레담’통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들고서 뚜껑을 열어 손가락 끝으로 약을 찍어서 엄마의 배에 바르면서 문지르고는 엄마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픔은 ‘희’의 손끝에 발린 약과 ‘희’의 손과 엄마의 배에 발린 약의 투명도가 역순으로 흘러 약통 속으로 들어 간 듯, 엄마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기쁨과 웃음이 피고 환희의 고함으로 벌떡 일어나면서 ‘희’를 껴안고 높이 들어 방안을 맴돌았다.

엄마의 아픔은 씻은 듯이 멎었다. 해맑은 ‘희’의 천진한 짓이 어미의 아픔을 잊게 했었다. 엄마의 병을 낫게 했었다.

너무나 감명 깊게 와 닿았던 그 일이 되살아나서 ‘희’가 보고 싶은데, 그때마다 ‘멘소레담’통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린 딸의 재롱이 사랑스럽기도 하려니와 달리한 유명(幽明)이니 ‘희’를 안아줄 수 없어서 이렇게 아직도 몰래 ‘멘소레담’의 통과 그림과 그 속의 약을 한없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끝내, ‘희’는 약통을 다시 살며시 닫았을 것이고 그리고 그 ‘멘소레담’을 종이 갑 속에 틀림없는 제자리에 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두 손으로 종이 갑 뚜껑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제자리에 닫아 놓았을 것이니 그 모든 행동을 내가 ‘희’의 손을 빌려서 해보고 있는 것이다.

’희’의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종이 갑을 가슴에 안아본다. ‘희’는 우리의 수호자로써, 우리의 주위에서 늘 나를 위로하고 뚜렷한 삶의 목적을 밝혀 이끌고 있다.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때나 ‘희’는 죽음의 의미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엄마 아빠! 제가 지켜 줄 테니 힘차게 사셔요!!

‘희’는 통 안에서 몸짓으로 외치고 있다. /외통-

5498.030114 /외통徐商閏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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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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