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될 무렵에서야 일터에서 돌아와, 곤히 잠든 남매의 얼굴을 차례로 들여다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아내와 함께 꿈을 청했다.
이 꿈은 마의 가스를 불렀고, 가스는 단란했던 우리 가정의 미래에 실현될 꿈마저 삼키고 짓뭉개버렸다.
쓸려간 자국이 너무 깊어서, 되씹어서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조차 두렵지만, 내게 이런 불운이 닥친 그 후회막급한 일이 도대체 왜 일어났는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고, 일이 닥칠 줄 미처 몰랐던 짧고 아둔한 내 생각이 엄청난 일을 자초했다고 생각하면 평생의 한으로 남아서 그 죗값을 치를 것이 틀림없기에 두렵지만 뇌어야 한다.
‘수희’는 가장 작고 낮은 베개를 베었고 ‘재영’이는 그보다 크고 높은 베개를 베었고 우리 내외는 더 높은 베개를 베었다. 가장 낮은 베개를 벤 ‘수희’는 아주 갔고, 그다음 높은 베개를 벤 ‘재영’이는 뇌신경의 마비로 왼쪽 다리가 불수의(不隨意)로 되었고, 그다음으로 높은 베개를 벤 아내는 실성한 사람처럼 정신을 놓고, 제일 높은 베개를 벤 난 그래도 정신을 놓지 않고 있다고, 딴에는 생각하고 있으니, 베개를 낫게 벨수록 장수한다는 옛 얘기와는 거꾸로 되고 있다.
모름지기 가스는 무거워서 아래로 쳐지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한 가지 실수만이라도 저지르지 않았다면 참화(慘禍)는 면했을 것이란 생각에 미치면 절통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유난히 추웠던 그해, 그날 저녁에도 한 뼘 두께의 삼단 접이 ‘스펀지’ 요를 늘 하는 대로 옆으로 세워서 문풍지 삼아, 병풍 삼아, 바깥으로 통하는 미닫이문에서 들어오는 삼단 같은 바람을 막았다.
그래서 어린 것들의 보온에 신경 썼던 자상함이 오히려 화를 불렀고 풀어낼 수 없는 한을 남겼다. 바람이 아무리 세게 들이닥치더라도 얼어 죽진 않았을 것을….
그날은 저기압이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문 가리기는 늘 하던 대로 하였으니까. 그리고 연탄을 갓 갈았는지 아닌지도 살폈어야 했는데 그런 시간적 여유가 없도록 늦는 내 일과에 덤터기를 씌울 수 없는 노릇, 이 역시 내 몫으로 한을 남기는 대목이다.
밤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아 하늘만 보고 씨름하는 아내, 초점을 잃은 눈동자와 어눌해진 그의 행동, 모두 내 보기에 안쓰러워 못 견디겠다.
툇마루에 앉아서, 없어진 ‘수희’의 환상에 먼 산만 멍하게 바라보는 아내의 모습, 아내는 딸 잃은 서러움을 이기지 못해서 말문을 닫고 있다.
무슨 말을 하랴! 그러면서도 머리를 털고 현실로 돌아와서는 눈물을 흘리며 ‘재영’이의 간호에 온 힘을 기울인다.
무의식 상태로 오랜 시간 병원 침대에 뉘어있었든 아들은 그 때문에 뒷머리가 짓물러서 피부가 없어졌으니 그 부분의 머리카락인들 남아났으랴! 동 동그랗게 자국나고, 신경은 마비되어 오른발을 절고 있다. 아들은 저승길을 가다가 되돌아왔다.
영영 볼 수 없는 ‘수희’, 딸만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자신을 돌이켜 생각한 아내는 밀려드는 괴로움을 긴 한숨으로 물리치고 나날을 보낸다.
아내의 이런 심경을 읽어 내리는 내 겹친 고통 또한 업보로 여겨, 아닌 척 외면하는 인고의 나날이다.
하건만 아내의 심경을 내 상상으로 어찌 죄다 가늠하랴! 나의 고뇌, 그것은 자식을 잃은 어미의 애끓는 마음에 어림없는 아비의 겉치레인지도 모른다.
액운을 탄 아내의 일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며, 운명을 거역하고 살아가는 나의 앞날은 또 어떻게 될 것인가?
순탄한 대로(大路)는커녕 헬 수 없는 고난의 예후인 듯 두렵다. 하여 새롭게 각오를 다지기도 하지만 아내를 위로하고 힘을 돋울 나의 청사진은 너무나 흐려서 믿음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난 환난(患難)을 수없이 극복한 나답게 앞으로도 또 오뚝이처럼 일어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난 일어서리라!
가까이 백운대와 인수봉이 하늘에 닿아 구름을 이어 북망산을 일깨우고, 그 산 넘어 ‘수희’의 손짓에 목 빼 눈을 던지다가 소스라쳐, 보행 보조 기구를 신고 운신하는 ‘재영’이의 달그락 쇳소리 걸음에 정신을 차려서 고개 내리는 아내의 반복된 이승과 저승의 나날을 지켜보는 내 가슴엔 숯가마의 불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가슴은 새까맣게 숯덩이가 되어서 거기에 업(業)을 새긴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