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3

외통넋두리 2008. 9. 2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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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5496.030106 아내 3

 

자정이 될 무렵에서야 일터에서 돌아와 곤히 잠든 남매의 얼굴을 차례로 들여다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아내와 함께 꿈을 청했다. 이 꿈은 마의 가스를 불렀고, 가스는 단란했던 우리가정의 미래에 실현될 꿈마저 삼키고 짓뭉개버렸다.

 

쓸려간 자국이 너무 깊어서, 되씹어서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조차 두렵지만 내게 이런 불운이 닥친 그 후회막급한 일이 도대체 왜 일어났는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고, 일이 닥칠 줄 미처 몰랐던 아둔한 나의 짧은 생각이 엄청난 일을 자초했다고 생각하면 평생의 한으로 남아서 그 죄 값을 치를 것이 틀림없기에 두렵지만 뇌어야한다.

 

‘희’는 가장 작고 낮은 베개를 베었고 ‘영’이는 그보다 크고 높은 베개를 베었고 우리 내외는 더 높은 베개를 베었다.

 

가장 낮은 베개를 벤 ‘희’는 아주 갔고, 그 다음 높은 베개를 벤 ‘영’이는 신경의 마비로 왼쪽 다리가 불수의(不隨意)로 되었고, 그 다음으로 높은 베개를 벤 아내는 실성한 사람처럼 정신을 놓고, 제일 높은 베개를 벤 나는 그래도 정신을 놓지 않고 있다고, 딴에는 생각하고 있으니 베개를 낮게 벨수록 장수한다는 옛 얘기와는 거꾸로 되고 있다.

 

모름지기 가스는 무거워서 아래로 쳐지기 때문이리라. 허지만 한 가지 실수만이라도 저지르지 않았다면 참화(慘禍)는 면했을 것이란 생각에 미치면 절통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유난히 추웠던 그 해, 그 날 저녁에도 한 뼘 두께의 삼단 접이 스폰치 요를 늘 하는 대로 옆으로 세워서 문풍지 삼아, 병풍 삼아, 바깥으로 통하는 미닫이문에서 들어오는 삼단 같은 바람을 막았다. 그래서 어린것들의 보온에 신경 썼던 자상함이 오히려 화를 불렀고 풀어낼 수 없는 한을 남겼다.

 

바람이 아무리 세게 들어 닥치더라도 얼어 죽진 않았을 것을…. 그 날은 저기압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문 가리기는 늘 하던 대로하였으니까. 그리고 연탄을 갓 갈았는지 여부도 살폈어야했는데 그런 시간적 여유가 없도록 늦는 내 일과에 덤터기를 씌울 수 없는 노릇, 이 역시 내 몫으로 한을 남기는 대목이다.

 

밤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아 하늘만 보고 시름하는 아내, 초점을 잃은 눈동자와 어눌해진 그의 행동, 모두 내 보기에 안쓰러워 못 견디겠다.

 

툇마루에 앉아서 없어진 ‘희’의 환상에 먼 산만 멍하게 바라보는 아내의 모습, 그는 딸을 잃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서 말문을 닫고 있다.

 

무슨 말을 하랴!  그러면서도 머리를 털고 현실로 돌아와서는 눈물을 흘리며 ‘영’이의 간호에 혼신을 다한다.

 

무의식상태로 오랜 시간 병원 침대에 뉘어있었던 아들은 그 때문에 뒷머리가 짓물러서 피부가 없어졌으니 그 부분의 머리카락인들 남아났으랴!

 

동그랗게 자국 나고, 신경은 마비되어 오른발을 절고 있다. 아들은 저승길을 가다가 되돌아 왔다. 영영 볼 수 없는 ‘희’,  딸만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자신을 돌이켜 생각한 아내는 밀려드는 괴로움을 긴 한숨으로 물리치고 나날을 보낸다.

 

아내의 이런 심경을 읽어 내리는 내 겹친 고통 또한 업보로 여겨 아닌 척 외면하는 인고의 나날이다.  하건만 아내의 심경을 내 상상으로 어찌 죄다 가늠하랴! 나의 고뇌, 그것은 자식을 잃은 어미의 애끓는 마음에 어림없는 아비의 겉치레인지도 모른다.

 

액운을 탄 아내의 일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며, 운명을 거역하고 살아가는 나의 앞날은 또 어떻게 될 것인가?

 

순탄한 대로(大路)는커녕 헬 수 없는 고난의 예후인 듯 두렵다. 하여 새롭게 각오를 다지기도 하지만 아내를 위로하고 힘을 돋울 나의 청사진은 너무나 흐려서 믿음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환난(患難)을 수 없이 극복한 나답게 앞으로도 또 오뚝이처럼 일어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일어서리라!

 

가까이 백운대와 인수봉이 하늘에 닿아 구름을 이어 북망산을 일깨우고, 그 산 넘어 ‘희’의 손짓에 목 빼어 눈을 던지다가 소스라쳐, 보행보조기구를 신고 운신하는 ‘영’이의 달그락 쇠 소리 걸음에 정신을 차려서 고개 내리는 아내의 반복된 이승과 저승의 나날을 지켜보는 내 가슴엔 숱 가마의 불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가슴은 새까맣게 숯덩이가 되어서 거기에 업(業)을 새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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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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