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2

외통넋두리 2008. 9. 2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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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2

5504.030214 우리 집2

 

딸을 잃은 슬픔도, 상처투성이로 소생시킨 아들에 대한 괴로움도 태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우리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만 또렷이 남아있다.



새파란 하늘이 먹구름 사이에 드러나더니 어느새 가슴에 묻은 자식의 무덤도 점점 가벼워져서 이제는 그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아예 늘 보는 아들의 거동조차 그대로 받아드리면서 평온함이 일상이 되었다.

 

세월은 참으로 엄청난 힘이 있다. 잃은 딸로 하여 미칠 것 같던 시절도 아련히 흐려지는 요즈음, 둘째 딸애의 재롱이 잃은 언니로 인한 우리의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게 하고 오빠의 발과 다리에 힘을 주고 있다.

 

그 힘이 우리내외의 참고 견디려는 노력에 보태어져서 비록 팔고 온 대구의 집만은 못하여 비록 우리가 깔고 앉을 집터는 좁지만 마음의 자로 재어서 넓히고, 우리식구의 도란도란 말소리가 여운(餘韻)으로 가라앉을, 반듯하고 규모 있는 방 세 개를 갖춘 단층기와집을 마련하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방, 부엌, 마루, 옥내 화장실이 비교적 깨끗하지마는 왠지 내 마음에 쏙 드는 집은 아니다.

 

그냥 집 같은 집이랄까?

발판으로 삼아서 디디고 뛸 수 있는 집이랄까?

그런 대로 미래를 향한 출발선상에 놓여진 집이랄까?

 

그렇게 여겨서 옮긴 집이지만 아무래도 부스럭 돈이 꽤나 들어갈 집이다. 부엌이 입식이고 화장실이 재래식인데 앞으로 수리하기로 하고 마음을 정했다.

 

이사를 과감히 결정한 것은 내가 집에 신경을 쓸 수 없을 만큼 내 직장 일이 바빴기 때문인데 모두가 아내의 의욕범주 내에서 마련되고 돈이 마련되었기로, 나는 이사한 뒤에서야 집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새 장판의 콩기름 댐 냄새가 방충망을 뚫고 들어오고 있다. 맞바람으로도 빠지지 않고 방안에 가득하다. 마루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늦도록 잔 짐 풀기 손질을 하고 있는데 어리지만 늘 큰애답게 놀던 딸애가 갑자기 집으로 가자고 조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아무리 타일러보아야 막무가내로 이끄는 것이다. 한사코 조르는 딸애는 제 마음을 어른에게 설명할 능력이 없을 터이니 우리가 딸애의 심경을 헤아려야 할 형편이 되어 딱한 노릇이 됐고, 엄마의 꾀로 이 작은 사태를 면할 수는 있었지만 마음에 잔잔한 진동이 가시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나만이 느끼는 일종의 자괴감일 것이다. 곡절을 겪은 끝에 얻은 둘째딸의 탄생은 각별한 의미를 늘 내게 암시한다.

 

엄마의 등에 업힌 딸은 그렇게 초롱초롱 맑게 굴리던 눈을 내리 감고 팔을 뻗어 밖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 엄마의 등을 두들긴다. 우리 내외의 눈에 아무리 보기 싫은 원한 맺힌 집일지라도 어린것은 거기서 자랐으니 제 집은 분명 거기일 것이다.

 

잊혀가는 우리의 과거를 되살리려 떼를 쓰는 것이야 말할 나위 없이 아니겠지만, 어린것의 순수한 귀소(歸巢)의식 탓으로 내게 밀려오는 파장이 예사롭지 않다.

 

마치 진즉 이런 집에서 살았더라면 내가 엄마와 아빠를 모시고 기쁘게 했을 텐데 왜 이제야 이사 왔느냐는 언니의 원망이 제 동생을 통해서 언니의 몸짓으로 느껴지고, 애절한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이상하다. 이 집을 싫어하는 언니의 시샘이 깃들인 동생의 몸놀림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하며, 별이 된‘희’의 넋을 위로하며 평생을 살아야할 일깨움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모든 것이 순리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는 불문곡직으로 ‘앙’이를 데리고 고개 넘어 ‘앙’이가 가자는 제집으로 데려가기를 아내에게 권했다.

 

아내는 순순히 따랐다. ‘앙’이는 언덕을 넘어 걸어가는 도중에 잠들고 말았다. ‘앙’이의 행동에 아무런 뜻이나 의문을 담을 수 없는 것인데도 굳이 여러 가지 해석을 달고, 풀이하는 것은 오로지 내 안에 결코 씻을 수 없는 업(業)의 한 층을 걷어내어 닦고 있는 것일 게다. ‘앙’이는 언니의 그림자다. 언니와 겹쳐 사는 우리 과거의 보증인이다.

 

잊으려 했던 지난날의 끔직한 일들이 번개같이 스치면서,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못하는, 나대로의 괴로운 삶일지라도 언제나 잊지 말고 넋을 달래리라고, 내 삶의 좌표가 되리라고, 다짐으로 가득하다.

 

‘앙’이는 곤히 잠들었다. 나도 갈피 못 잡던 심령의 진동이 가라앉는다.

 

그렇고말고, 그 무서운 지난 일을 잊고 살다니! 만부당한 짓이다. 이후 언제나 ‘앙’이는 신비의 존재로 내게 다가온다.

 

삶은 나고 사라지는 일순(一瞬)의 단면인데 거기에 좋고 나쁜 것, 크고 작은 것, 가릴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따지고 보면 어느 곳 하나 우리 인간과 무관한 것이 어디 있겠는지!

 

아득히 옛날부터 누군가가 묻히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으며 사람 태어나지 않은 집이 어디 있겠는가만 얄팍한 내 생각이 죽고 사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어 고뇌하는 것은 마치 내가 ‘집 따까리’ 늘리는 것에다가 삶과 죽음을 덧붙이는, 죄스런 생각을 하는 꼴이니 이 마당에 무슨 망상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이사 온 이 동네도 얼마 전까지도 공동묘지 자리였다지 않는가? 그러니 나와 인연이 없는 사람일 지라도 아무런 인연이 없다고 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싶은데, 문득 내가 이런 생각을 함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되어버린다.

 

분명 나는 앞으로 한 순간을 마칠 것이지만 분계(分界)를 넘나드는 삶이 이렇게 감미로울 줄은 미처 몰랐다. 착잡한 생각만 몰고 오는 집, 남이 살던 집이지만 내게는 새 출발의 새 집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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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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