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외통넋두리 2008. 10. 1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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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5.030818 운명(殞命)

초조하게 나날이 이어졌다. 장모님의 회복이 의외로 순조롭다던 의사들의 이제까지의 말과는 다르게 오늘 아침부터 의식을 잃고 계신다는 전갈이니 마음 졸이든 불안은 현실로 닥쳤다.

그렇게 총명하시던 분의 의식이 갑자기 혼수상태로 된 데 대해서 따질 겨를은 없다. 병실을 드나들던 의사들의 얼굴에 심상치 않은 그림자가 새겨진 것을 알아차린 처 형제들은 비상 소집되었다.

장모님은 수술받으시고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딸들이 모여서 지켜보는 가운데 말없이 이승을 떠나셨다. 구 남매 중 딸 여덟을 두신 당신은 일직이 홀로되시었다.

그 어려운 해방의 소용돌이에서, 민족상잔의 전란 중에서도, 자식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살리셨다. 형제 중 누구도 남의 집에 ‘수양딸’로 이름한 식객으로 잠시라도 보내지지 않았다. 모두를 반듯하게 키워내셨다. 비록 만족스러운 교육효과는 얻을 수 없었지만, 살아남는 것만도 힘겹던 시절이니 거기까지를 기대할 수 없는 일, 대견스럽게 자라서 행복하게 사는 아들딸들의 끝을 보지 못하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장모님의 명복(冥福)을 빌 따름이다. 옛말 따라 초로와 같은 인생, 풀잎의 이슬과 다름없다.


어렸을 때 늘 골골하던 자기를 등에 업고 피난길을 떠났다던 아내의 되풀이 말에 난 어느새 그때의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 더구나 전쟁 때는 내가 수용소에 있을 즈음이니 더욱 감회가 깊다.


피난하고 있을 때 흘러 들어온 패잔병 소년을 굶주림에서 건져 내보냈다던 자애로운 장모님, 모름지기 그래서 같은 처지에 있었던 나를 사위로 쾌히 승낙하셨는지도 모른다.

이제 난 어엿한 한 시민으로서 살고 있다. 이렇게 살도록 인연 지어진 것도 우연은 아닌 듯, 만감이 서린다.


억지로라도 잊어야 하는 고향의 어머니가 겹치면서 형언하기 어려운 비감에 젖는가 하면 또 한 번 내 외로운 인생의 의미를 독백하고 북녘 하늘을 바라본다.

어머니는 어떻게, 계시는지, 돌아가셨는지, 까마득히 먼 곳에, 얼굴조차 가물거린다.

내 삶의 바탕인 어머니만은 살아 계시리라는 믿음도 오늘따라 흔들리고 있다. 늘 부옇게 바라보이든 부모님 상(像)이 오늘 깨지고 있다.

조각난 꿈을 꿰어 맞춰보고자 하는 내 몸부림은 몇천 조각으로 갈라 흩어졌고, 장모님을 극진히 모심으로써 고향에 계신 어머니도 누군가에 의해서 모셔져서 건재(健在)하시리라던 희망이 오늘, 이 아침에 비눗방울 터지듯이 꺼져 공중으로 흩어진다./외통-

5525.030818 운명(殞命)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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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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