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2

외통넋두리 2008. 11. 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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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6553.040121 아내 2

 

내가 내 생각을 온전히 나타낼 수 없어 안타깝지만 그래도 어렴풋이나마 들어내 놓지 않는다면 나는 영영 나와 아내의 마음 사이에 투명한 유리 칸막이를 쳐 놓은 채로 있을 것 같다. 이것을 걷지 못하고 말 것 같아서 몸부림쳐가면서, 그대로 내 마음을 들어 낼 수 없어서 진저리 치면서, 몇 날을 두고 망설이다 어림으로라도 그려보기로 한다.

 

전쟁이 끝난 그 시기에 우리는 몹시 떨었다. 시골은 시골이라서 은신할 집이 있고 먹을거리를 얻을 농토가 있었지만 도시는 일자리가 없었으니 이와 판이하게 달랐다. 이런 사정이니 나를 받아줄 일터는 좀처럼 없었다. 방황하던 중 몇몇 독지가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얻은 작은 일터가 확실히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런 터전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미래도 안개 속이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어떻게 나를 믿고 따랐는지, 그 마음이 더없이 갸륵하고 진정으로 고맙다.

 

갖가지 결혼 조건 중에서 어느 하나 남들과 겨누어서 나은 구석이 없는 나에게 자기의 일생을 걸어 나를 택했다고 생각하니 나는 지금도 그때의 아내의 태도가 믿어지지 않아 그저 고개 숙여질 따름이다. 유독 남다른 점이 있다면 내게 달린 끄나풀이 없고 붙은 혹이 없으며 생존을 위한 방어(防禦)술 외엔 더덕더덕 붙은 욕심의 때가 없다는 것뿐이다. 헌데도 나를 선택한 이유를 도시 알 수 없다.

 

계산으로 되지 않는 사랑의 힘이라고 되돌아보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다. 운명이라고 간단히 치부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충분한 시간을 내어서 가늠할 수 있도록 내 모든 결점이나 약점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나를 유리판 위에 올려놓고 분석할 시료(試料)를 남김없이 짧은 기간에 주었다. 또 시험관에서 끓이고 절이고 섞어볼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담아 보냈으니 그 운명을 만들 시간을 준 셈이기에 그것조차 간단히 단정 할 수가 없다. 나로선 아내가 평생에 후회 없도록 온전하게 내놓았는데 왜, 무엇이 나를 택하도록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내는 내 이런 솔직함에 매료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그 때의 일을 곱씹어보지 않았다. 아내에게 다른 이유를 들어 찬사를 보내고 싶을지언정 그 일을 되묻고 싶지는 않은 심사다. 그 것은 아내의 아문 상처를 건드리지나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내에게 가라앉아 있는 앙금이 흩어져서 내게 튀겨 오지나 않을까 하여 꾹 참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 톨도 숨기지 않은 내가 너무나 비인간적이어서 오히려 그 점이 아내의 마음을 서글프게 하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어쩌면 작은 점 하나라도 숨김이 있어서 때때로 그것을 흠잡아 늘어지고 대들 수 있는, 사람다운 면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그때의 일을 되잡아 꺼낼 수가 없다.

 

그렇게 한 모든 것이 내게 사람다운 면을 잃게 했던 과거이기에 들추기 싫은 것이고, 그것이 나의 또 다른 흠으로 되니 이제까지의 뭉쳐진 흠에 더 보태고 싶지 않은 내 달라진 모습이 싫어서 더욱 망설이게 한다.

 

내심, 나는 배수의 진을 치고 앞으로 긍정적인 면만이 내게 있도록 최대한의 몸 움츠림이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꾸미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떤 착각에 의해서 나를 선택한 아내의 행동에 한없는 고마움이 배어있어서 늘 부담을 안고 산다.

 

도와주는 이 없는 나를 선택하고 난 후 얼마 동안은 눈밭에 남기는 발자국을 연상하면서 고무도 되었으리라! 뚫고 나아가면서 발자국 둘이 넷 되고 여섯 되고 여덟이 되었을 때 무진 기뻤으리라!

 

그러나 어느새 흰 눈은 먼지로 뒤덮였고 바람에 날린 눈발이 무릎위로 차면서 발자국은 한동안 없어지다가 다시 여섯으로 줄었다가 따뜻한 햇볕을 받아 눈 녹은 어느 날 진흙 밭에 여덟 발자국을 남겼다.

 

이제 발자국 넷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길로 갔다. 아직 아내와 내 발자국만은 남아있지만 아내의 발자국은 또렷하지 못하다. 진흙 밭에 끌려서 길게 늘어져서 패이고, 가늘게 이어졌다가 또 패이면서 나와 함께 자국을 남기면서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끌리면서 이어가는 아내의 발자국이 나를 선택한 결과이다. 정신적 부담이 몸으로 옮기고 마침내는 절며 고난을 헤치는 아내의 일생은 희생 그 자체다. 모든 짐을 혼자 지고 눈밭과 진흙 밭을 걸어온 아내여! 지금 나는 내 할 말의 지극히 작은 한 부분밖에는 나타내지 못했고 내 심경 한 점을 겨우 털어놓았을 뿐이다. 고맙기 그지없다. 가상하다. 내 아내여!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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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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