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외통넋두리 2008. 11. 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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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6563.040314 우정

 

우정이란 어떤 것을 일컫는가. 우리 부부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틈내는 진기한 동성 간의 우정에 내가 장승이 되었던 한 때가 있었다.

 

언제나 다름없이 그 날도 정시 퇴근하여 종을 눌렀다. 그러나 아내는 나를 맞지 않았다. 나를 맞는 것이 아니고 긴 초인종소리를 정지시켰을 뿐이다. 아내는 그대로 소파로 되돌아가 늘 혼자만 보는 티브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오든지 말든지, 고개 돌려보지도 않았다. 한동안 없었던 아내의 ‘심사 뒤틀림 병’이 도진 것 같아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내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면서 생각해보았다.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몸을 낮추고 마음을 비워, 침을 한 모금 삼키고 나서 슬금슬금 아내 곁으로 다가서 스치듯이 앉았지만 아내는 철옹성이다. 다시 물러 나와서 곡절을 알아내는 침묵의 배회를 했다. 방마다 돌면서 무슨 단서라도 없을까하고 유심히 살피다가 낯선 물건을 하나 찾아냈다. 자그마한 보시기에 들어있는 전복죽이다. 다음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곤죽이 된 것은 이 죽사발 때문이 틀림없다고. 그런데 이 죽사발의 내력을 내 머리로는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었다. 이제까지 나는 한 번도 이런 모양의 죽사발을 본적이 없었고 죽을 먹어야 할 만큼 아내의 속사정에 이상이 있는 줄 몰랐기 때문이다. 갑자기 눈에 뜨인 죽사발이 영 생소하기만 했다. 혹 애들 이모들이 이렇게 세심하게 마음을 썼을까? 아니다. 그렇다면 애들? 아직 공부하기 바쁜 애들 또한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 할 수가 없다. 어떻게 저 전복죽의 정체를 파악 할 수 있을까? 다시 다가가서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그릇을 싸쥐어 보았다. 죽 그릇은 아직 따듯하다. 아마도 내가 들어오기 바로 전에 누군가가 들렀다 나갔나보다. 그 사람은 내 퇴근시간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누구일까? 아내의 많은 친구 중에 어느 누군가가 가져온 것이 틀림없다. 누가 다녀갔는지 짐작이 갔다.

 

아내에게 그 친구의 이름을 치켜 부르면서 그 사람이 웬일로 이렇게 마음을 쓰느냐며 정곡을 찔렀다. 한 발짝 멈추어 섰다가 다가갈 때, 아내는 눈물을 흘리면서 일러바치듯이 토해냈다.

 

친구의 갸륵한 마음이 산같이 밀려오면서 외롭게 앉아있는 자기를 감싸 안았던 것이다. 아내 옆에 서있는 나를 사정없이 밀어붙이고 그 자리에 친구가 양팔을 벌리고 다가와서 끌어안고 다독거리고 있음을 아내는 느꼈을 것이다. 아내도 모르는 사이 남편의 존재는 이때 이미 없었던 것이다. 조금 전 친구가 가고 난 뒤에도 아내는 그저 고맙게만 생각했다. 헌데 내가 들어오면서 조금 전 나간 친구와 막 들어온 나와 들고나는 시간차가 축이 되는 저울로 되면서 한쪽에는 친구가 올라가고 다른 한 쪽에는 내가 얹어졌다. 친구의 무게로 튀겨 들리는 널빤지는 나를 공중으로 내동댕이쳤다. 중심은 친구의 쪽으로 갑자기 이동하면서 두 팔로 아내를 감싸 안았던 것이다. 아내의 심경이 환하게 들여다보이는 듯했다.

 

아내는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 내어 울었다. 그리고 소리 질렀다. 친구가 더 낫다면서! 언제 내가 자기의 몸을 지금 이 친구처럼 생각했느냐는 울부짖음이다. 자기의 의중을 내게 호소한번 해 본 일이 없는 아내이련만 나를 보는 순간 밀려온 남편의 상대적 열등이 울분을 토하도록 불을 질렀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거슬리는 이 엉뚱하게 된 상황에 당황할 뿐, 뾰족한 대안은 없었다. 후련하게 울도록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아내에게 자주 들렀던 그 친구는 이번에는 기념주화를 들고 와서 선사했다. 사람은 보지 못하고 물건만 나중에 보게 되는 나는, 이 일의 심각성을 아내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 주저하면서도 그 대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옛말이 생각났고 필시 무슨 연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남의 선한 마음을 의심함으로써 오히려 내가 그 친구에게 죄짓는 것 같아서, 그 친구의 속마음을 캐보자는 말을 아내에게 더는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다시 우리의 삶에 대한 몸부림을 아내의 친구는 눈치 채고 거기에 매달려서 어떻게 해 보려는 듯 접근학기 시작했다. 우리는 시골에서 젖소를 치고 있었는데, 아내는 거기를 비집고 들어오려는 친구의 시도에 아무런 의심 없이 우리의 일을 털어놓으면서 의논하고 진행시키고 있었다. 이미 상당한 진척이 있은 뒤에 내가 알게 되었다. 그 때도 아내의 마음에 어떤 자극을 주어서, 친구와의 관계를 한번쯤 생각하게 하고 싶었지만 호의에 감사하는 아내에게 바위와 돌 위에서 홀로 살아남으면서 내가 경험한 바의 냉정한 처신을 호소하기에는 너무나 아내의 마음이 순수했다. 아내의 마음이 흠뻑 친구에게로 기울어 있었다.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은 아내의 마음은 아니었다 치더라도 적어도 자기의 하는 일에 도움을 주리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거기에 내가 끼어 들 여지는 없었다. 아내는 너무나 순진했다.

 

사단은 이때부터 얽혔다. ‘청평’에서 우리가 기르던 소에 관심을 가졌던 그 친구는 우리의 옹색한 토지상황을 알아채고 더 넓은 풀밭과 보다 큰 축사를 찾아 나설 것을 부추겼다. 한 시간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나의 회사생활은 그런 것들을 엄두 낼 틈이 없었다. 다만 공휴일을 기해서 아내와 함께 나들이 삼아 다니는 정도였다. 나의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걸맞게 행동할 따름이었다.

 

아내는 넘어갔다. 은행 빚까지 얻어가면서 무리한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적당한 시기에 환가해서 지금 우리가 하는 ‘청평’의 축산시설을 그 장소에서 확충해 볼까하는 소박한 꿈을 실현시키려는 나름의 숨은 꿈을 꾸었고, 친구는 어떻게 하든지 아내를 꾀어서 자기네 아들의 일터를 장만하여 주려고 고심하며 또 다른 셈을 하고 있었으니 이것이이야 말로 동상이몽으로 되어 사태는 곪아가고 있었다.

 

꿈을 깬 아내는 내게 호소 할 수도 없고 친구에게도 하소할 수 없는 구렁에 빠졌다. 아내는 옹호하던 친구를 갑자기 비난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따라 가다가는 빚더미 위에 올라앉아서 그나마 일구어놓은 터전을 깡그리 무너뜨릴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내가 모르는 다른 고민을 하게 됐다. 참으로 안타가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간청하고 그 다음에는 하소연하고 그러다가 다툼이 일어나고 급기야는 쟁소의 준비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지경이 되어서야 중심은 내게 이동되었고, 친구에겐 쏠렸던 사랑의 그림자가 지워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노골적으로 내게 친구와의 관계진상을 털어놓았다. 이때에 내 할 말은 지나간 것에 대한 탓이 아니라 오히려 아내를 위로하는 처지로 급변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로 이동한 중심축은 아내의 위치를 안정시키면서 무겁게 자리를 잡았고 튀겨 올라간 친구는 몇 천 바퀴의 공중회전을 하면서 내 동댕이쳐졌다.

 

우리 부부가 진작 아내의 친구로 인한 불꽃 튀기는 언쟁을 벌였던들 지금에 와서 이렇게 가슴 쓰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는 친구의 배신을 내게 한마디도 얘기하지 않았다. 허지만 나는 빤히 그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내에게 그 아픈 곳을 다시 헤집을 수 없어서 마냥 어정쩡하다.

 

내 일찍이 여자 없는 조직사회. 영어(囹圄)의 삶과 군 복부의 십 년을 생활하면서 짝을 이루어 생활했음을 생각할 때 아내의 친구믿음을 탓 할 수는 없다. 지난 세월동안 홀로 집을 떠나서 세상을 사는 동안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의논하고 위로 받고 의탁하는 생활을 했기에 아내의 친구사랑이 내 지난날의 짝이었던 친구들을 줄지어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서 내 삶의 아린 상처가 오히려 쓰리고 저리다.

 

아낸들 내 이 쓰린 아픔을 핼 수 있었겠는가 싶고, 하나 된 우리사이에도 ‘횡경 막’처럼 갈라 서로를 둘러있구나 싶어서 허전할 뿐이다.

 

우정은 신뢰에서 울어나는데 아내의 친구 믿음은 너무나 일방적으로 쏠려 있었다. 그래서 적당한 지지와 저항이 없어서 넘어지고 말았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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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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