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외통넋두리 2008. 11. 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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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移葬)​


샛문이 열렸다. 무쇠화로를 조심스레 받쳐 오신 할머니의 얼굴이 붉게 비쳤다. 어두웠던 주위를 환하게 비치는 화로의 불덩이, 이제 막 떠온 불이다.

화로위에 얹고 불 쬐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등은 핏기 없이 떨린다. 할머니는 그 손등을 다른 손바닥으로 애써 비비지만 손가죽은 할머니의 애절한 마음을 저만치 밀쳐 내고 허물같이 따라 밀렸다. 다시 화로 가에 손목을 가까이 대시더니 능숙하게 손을 움직여서 반지르르 손때 묻은 무쇠화로손잡이에 가져가셨다. 할머니의 동반자 무쇠화로다. 할머니의 일생은 이 무쇠화로와 함께 시작되고 마칠 것이니 무쇠화로는 우리

‘괸돌집’을 상징한다. 난 어느 집에 가서도 우리 것과 같은 무쇠화로를 본적이 없다. 모름지기 우리 집의 대물림인 듯하다. 할머니는 평생을 지금과 같이 하시면서 살아오셨을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한다. 화로에 불 담는 일을 하시지 않는 다른 집 할머니들과 다르게 사신 우리할머니의 생을 한참 후에야 어렴푸시나마 알게 되었다. 그 때 이후 내 마음은 우리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늘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거기에 온 정신을 쏟고 살면서도 실행하지는 못했다. 그저 돕는 시늉만 했을 뿐이다. 할머니의 운명을 내가 대신 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먹어 봤다. 그런데 그 것도 마음뿐 몸은 따로 흘러갔다.

속이 아린 내 어린 시절회상이다.

마땅히 오늘 우리 할머니의 묘역을 참배하고 내 할일을 생각해야 함에도 그렇게 할 꿈도 못 꾸는 현실이 저주스럽다. 생각할 겨를은 없다. 우리할머니는 누군가에 의해서 고이 모셔졌으리라고, 지금쯤 누군가에 의해서 곱게 가꾸어지리라는 기대를 버릴 수 없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도 난 이 자리를 외면 할 수 없다. 내 손이 닿는 영역에서 어디든지 내 형편이 허락하는 한 누군가를 보살핀다면 나를 돕고 우리부모를 돕고 우리형제들을 돕는 길일 터이니 주저치 말고 해야 한다. 할머니와 부모님의 말씀으로 되어 귓전을 때리고 있다.

할머니는 삿갓봉의 우리 조상 묘에 누군가가 밀례(면례:緬禮)를 했는데 누구의 묘인지 알 수 없어서 고심하는 집안 어른들의 말씀을 전해주신다. 할머니의 얼굴은 상기되어 나에게 호소하듯 속삭였다. 밀례의 말뜻을 몰라 되묻는 나의 의문을 풀어줄 수 없는 할머니는 속상하셨다. 이 일을 안 것은 훗날 내 족보를 더듬으면서 그 때 비로써 알게 되었지만 이제 그 때의 그 말이 어렴풋이 생각나는 오늘이다.

오늘은 장모님을 이장하는 날이다. 모두가 아내의 배려다. 조상을 기리고 후손을 복되게 하려는 아내의 효심이 이렇듯 적극적이다. 아마도 통일이 되어서 고향에 간다면 아내는 모든 조상의 묘역을 살피고 단장할 것이라는 나의 믿음은 나를 즐겁게 한다. 할머니가 우리집안의 걱정을 하신 것 같이 아내도 우리집안을 위해서 몸 사리지 않고 팔 걷어붙이면서 만사에 우선해서 서두를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흐뭇하다.

모닥불 앞에 앉아있는 아내의 얼굴에 할머니의 얼굴이 겹치면서 아내의 손등이 할머니의 손등에 얹혔다.

내 두 눈이 흐려졌다.


5593.050226 /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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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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