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하늘에 날벼락! 우리 부부에게 아직 이토록 충격적인 소식은 없었다. 악성종양? 말이 순하여 혹이지 쉬운 말로 암이란 소리가 아닌가?
해마다 해온 종합검진이다. 검진받는 동안에 한 번도 함께 하지 못했지만, 검진을 마치는 날은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와서 숨을 고르지 못한 채, 전화로 알려주었던 아내의 '이상 없음'의 반가운 소식을 확인하는 때마다 날아갈 듯 기뻤는데, 올해의 종합검진은 유난히 여러 날을, 실랑이하듯 끌고 있더니만 이런 날벼락을 맞았다.
진단 첫날부터 이제까지의 사정을 찬찬히 털어놓는 아내의 얼굴에서 핏물이 빠지고 있다. 백지장이다.
아내가 연례적으로 다니는 병원, 우리나라에서는 손꼽힌다는 그 병원을 나는 이때까지 믿어왔다.
그런데 어째서 느닷없이 들이닥친 병마란 말인가? 병원은 어째서 잡고 있던 병집의 고리를 제때 낚아채지 못했으며 여러 해 동안 방치했단 말인가?
하라는 대로 다 하고도 위내시경을 거부하는 아내의 철없는 짓에 병원은 왜 순순히 응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아내의 내시경검사 기피가 한 해 두 해가 아니었음에도 무슨 연유로 속이 거북한 증상과 머리 아픈 증상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서 그냥 돌려보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환자가 어느 정도의 검사 과정을 거치면 이 환자는 검사받는 목적이 검사 기기와는 상관없이, 어떤 방법이건 상관하지 않고 병의 원인을 알고 싶어 한다는, 환자의 심리도 함께 진단하여 그 환자의 욕구에 상응하는 인술을 베풀어야 함에도 환자의 피상적 요구에 대책 없이 응하는 그 의료 서비스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시비를 가릴 겨를이 없다. 내겐 어느 경우보다 우선하여 아내의 병과 그 증상을 정확히 알고 처신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이다. 그래서 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는 내가 아내의 보호자임을 확인하고 나서 정색하며 작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위내시경으로 찍은 아내의 위 안쪽의 사진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동그란 위벽 위쪽에는 여느 곳의 연분홍색과 달리 검푸른색의 불거진 부분의 드러나 있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순간, 이 사진이 아내의 사진이 아니길, 의사의 실수가 있었기를 바라는 엉뚱한 생각마저 스쳤다. 그리고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나의 절박한 심정에서 바람일 뿐, 엄연한 사실이었다.
수술하면 이년 반 생존 할 수 있고, 수술하지 않으면 육 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말에 전신의 피가 빠지면서 기가 끊어지고 오그라드는 것을 느낀다.
정신을 차리고서도 내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으나 의사는 냉정하게 되뇌었다. 수술하면 이년 반, 수술하지 않으면 육 개월. 다시 물을 수 없도록 벽을 치고 있다. 사진을 받아 들고 발길을 돌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 전개다. 어째서 이런 일이 우리 부부에게 닥친단 말인가? 내 기괴한 삶의 여정에 또 한 가지 더해지는 운명의 괴기한 매듭의 보탬이다. 난 머리가 혼미해진다. 다시 기운이 쭉 빠졌다. 병원 밖으로 나와서는 언덕길 가의 바위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위 속의 검푸른 혹이 하늘 가득히 커졌다.
나는 하늘을 향해, 해를 향해 한숨을 불어 올렸다.
온몸은 바닥으로 깊이깊이 가라앉아 파묻히고 있었다. /외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