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53.990920 주머니
확 털어버리고 새로 짓고 싶다,
확 지워버리고 새로 그리고 싶다.
아내도 나도 못하니
아예 생각나지 않게
미물이 되고 싶다.
아내는 무너지고 나는 없어진다.
꽃길이래도 아내보고
먼저 가랄 수는 없는 노릇
내 심장은 이미 멎었고
그림자인지,
허깨비인지
움직이는 어제 오늘.
시련은 꽃 봉우리
나는 이대로 꺼져 들어가도
아내의 아픔에 비길 수 없는 것.
무엇으로 위로 하랴
가슴을 치고 울분을 토한들.
할 바 몰라 차라리 미치면 좋겠다.
아내는 오늘도 말없이
말의 의미를 버린다.
아픔을 지울 수도 외로움을 털어낼 수도
죽음을 입에 담을 수도 없다.
생각은 지난날에 맴돌다
앞날에 스러지니 머리만 졌네.
도리질 하네.
아내는 말 않는다.
아내는 주머니를 찼다.
치마 속에 차지 못하고
옆구리를 뚫어 배알에다 매달았다.
한을 녹인 말이
줄을 타고 고무주머니 속에
점점이, 아내를 담아낸다.
동전 한 닢 손자 주어야 할 때,
고무주머니 속에 자기를 담아,
보고 한숨지고
만지작거리며 눈물진다.
바라보는 나.
가슴 탄 재가 콧구멍으로 입으로
온 방을 물들인다.
숨이 막힌다.
아내가 주머니를 떼고 훨훨 뛰어 다닐 날
나는 꽃향기를 뿜으리라.
서러움을 담아 녹인 담즙
억울함이 응어리져 맺힌 담즙
고혈이 고이는 주머니에
가여워 나 입 맞추노라.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