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빼어 털어버리고서 새로 알뜰하게 짖겠다. 확 쓸어서 지워버리고 새로 올곧게 그리려니. 아내도 나도 못 할 짓. 아예 생각나지 않도록 미물이 되었으면 싶다. 아내는 나날 무너지고 나는 부옇게 없어진다. 꽃길이라도, 아내더러 먼저 가랄 수 없으니 내 심장, 이미 멎었고 그림인지, 허깨비인지 움직여지는 어제오늘. 시련은 꽃봉오리래도 난 이대로 꺼져 드는 아내 아픔에 못 비겨 참을 수 없는 괴로움 어떻든 위로하려는데 가슴치고 울분 토한들 할 바를 몰라 차라리 미쳐버리면 좋겠는데. 아내는 오늘도 말없이 말의 의미를 저버린다. 아픔을 지울 수 없고 외로움도 털 수 없고 죽음도 뇔 수는 없다. 생각은 지난날만 파고 앞날은 마냥 스러지니 하늘에 대고 도리질만. 아내는 말하지 않는다. 아내는 주머니를 찼다. 치마 속에 차지 못하고 옆구리를 두 구멍 뚫어 배에 고무줄 매달았다. 한을 녹인 말이 되어서 줄 타고 고무주머니에 점점이, 아내를 담는다. 동전 한 닢 손자 생각, 고무주머니 속엔 담즙, 자기를 담아내며 한숨, 만지작거리며 눈물진다. 아내를 바라보는 나는 가슴 탄 재가 콧구멍 입으로, 기막고 숨막혀 온방 물들여 서성인다. 아내가 주머니 떼고서 훨훨 뛰어다닐 그날에 나는 꽃향기 뿜으리라. 서러움담아 녹인 담즙, 억울응어리 맺힌 담즙, 고혈고이던 그 주머니, 가여워 나 입 맞추리. /외통-
6753.990920 주머니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