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혼1

외통넋두리 2008. 12. 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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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늘 염려하는 대로, 오늘도 미리 알아보지 않은 탓으로 체육관 앞까지 갔소.

낌새가 여느 날과는 달랐지만, 행여나 해서 들어갔소. 5분이 넘어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을 때 그제야 오늘이 휴무인 것을 알았고 발길을 뒤로 돌리게 되었소.

당신을 보내고, 당신을 잊으려고 미친 듯이 뛰다 보니 오늘까지는 왔지만 이제 버티기가 어렵구려. 열심히 살기 위해, 당신의 몫까지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때때로 먼저 간 당신이 야속하기도 하오.


여보, 돌아오는 길에 정말로 가기 싫은 길, 당신과 함께 당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돌던 올림픽공원 코스를 돌기로 작정하였소. 그러나 가슴이 조여들어 몇 번이고 발길을 돌리려 했으나 이런 내 행동을 당신이 보는 것 같고, 그것이 당신이 바라는 바가 아닌 것 같아서 발을 끌다시피 옮기면서 겨우 우리가 가던 코스대로 돌았소.


철철이 꽃 피던 그 아름다운 산책코스도 오늘은 삭막하오. 가랑잎과 얼음덩이만이 길가에 널브러져 있고 말라빠진 갈대가 사그라져 들어가는 슬픈 몰골을 하고 있소. 어쩌면 마지막 가는 당신을 보는 것 같아서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면서 멈췄다가 다시 천근의 발을 옮기었소.

먼발치 당신이 앞서가는 것 같고 곧 내가 따라잡는 것 같은 발걸음이었지만 당신은 내 손에 잡히지 않았소. 돌아오는 반 코스에 언제나 걸쳐 앉아서 숨을 고르며 훗날을 나직이, 힘없이 말하던 그 자리를 지나쳐서 저만치 가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소. 내 눈물 어린, 내 눈엔 당신이 앉아있는 듯이 보이지 않았겠소. 그래서 뒤로 돌아가서 바로 그 벤치에 앉았지만, 또 당신은 없었소.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소.


당신은 말하였소. 나는 그 자리에서 깨우쳤소. 오, 당신이 간 뒤에 내가 버틸 수 있도록 하느님을 내게 알게 하려고 당신 스스로 나와 함께 천주께 귀의하기로 했던 것을.

옳다. 당신은 이미 당신이 간 뒤의 나를 생각해서, 내 외로움과 내 감당키 어려운 흔들림을 막고, 나를 지탱시키기 위해서 하느님께 의지하라고 붙들어 매 놓고 떠나간 것 같구려.

깨쳤으니 부디 안심하고 평안히 있다가 이다음 나와 만나서 내가 이승에서 당신의 몫을 얼마나 잘했는지 일일이 알려줄 때, 당신은 귀담아들어 주구려.


또 당신이 먼저 일어나 저만치 가는구려. 나 또한 뒤따라 일어서서 의젓한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따라가지만, 당신은 보이지 않고 텅 빈 보도와 넓은 길에 나 홀로 갈 뿐이오.


억울하다. 나는 지금 책상 앞에서 눈물로 얼룩진 이 마음을 표현하고 있지만, 만 갈래 찢어지는 가슴을 감당할 수가 없소. 헤아릴 수도 없소.

오직 내가 당신을 만나는 날까지 당신의 뜻에 따라 애들을 돌보는 일일 것이라고 여길 뿐이오. 지켜보시오./외통-

6816.010301 진혼 1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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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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