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결혼

외통프리즘 2008. 12. 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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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혼식

7562.040302 어떤 결혼식

수양딸은 문 앞까지 나와서 허리를 굽히고 정중히  인사한 다음 ‘아가씨 손수건!’ 퉁명스럽게 뱉어버렸다. 양손을 내밀지만 아가씨는 뒤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갔다. 아가씨와 비슷한 나이의 수양딸은 아무런 표정 없이 되돌아서 대문을 들어섰다. 곧 아가씨의 방에 들어가서 이부자리를 개키고 마루에서 빗자루를 들고 들어 왔다. 아가씨는 지금 코앞에 있는 초등학교로 등교했다. 수양딸이 있는 집 식구들은 벌써 학교나 직장으로 물 빠지듯이 빠져나간 뒤이고, 이제 막 아가씨를 내 보냈다. 그리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집안을 치운다.

 

고을의 모든 이들이 우러르는 집안에서 자라는 아가씨가 또래인 수양딸의 눈에는 공주와 다를 바 없이 보이고 아가씨를 시중드는 자기는 시녀와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은 늘 어두웠다. 이래서 이날까지 오면서 자주 의기가 꺾일 때가 있었는가하면 그늘이 드리웠던 때도 있었다.

 

수양딸은 몇 년을 더 자라서 친오빠의 주선으로 시집갔다. 남편을 따라 도시로 나가서 집도 마련하고 자녀도 낳아 기르게 됐다. 그러는 사이 수양딸은 많이 변했다. 아가씨와 헤어진 후로는 아가씨의 사정을 들을 수 없을 만치 멀리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가끔 보고 싶기도 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보다는 사는데 바쁘고 과거가 수치스러워서 일부러 소식을 끊어놓고 왕래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옳다.

 

수양딸이 웬만큼 살게 되면서 조금씩 주위를 살피게 되었고, 지난날의 아가씨에 대한 미운 정이 곱게 아롱지며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수양딸의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갈 만큼 세월이 흐른 뒤에, 우연치 않게 아가씨의 뒷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즈음 아가씨가 명문대학을 수석으로 마치고 보금자리를 마련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이 소식을 들은 수양딸은 갑자기 더는 미룰 수 없도록 아가씨가 보고 싶어졌다.

 

 

아가씨는 재능이 뛰어난데다가 후원하는 부모가 덕망을 갖추어 남부러울 것 없는 자기수양을 쌓았다. 그러면서 아가씨는 변해갔다. 부모세대의 모순을 비롯해서 동서고금을 망라한 사회의 알짜 모순을 파헤치면서 자신의 생각을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여기에 그 씨를 뿌릴 땅을 찾아 헤맬 정도로 변한 것이다. 아가씨의 눈에 탐탁하게 보이지 않는 삶의 현실, 자기의 생각과 도리에 맞는 꿈의 사회를 심어보려는 아가씨를 세상 사람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아가씨는 이런 현실을 성토했다. 자기 이상을 구현하고 싶었다. 그것은 부모와 조상들이 닦아놓은 삶의 터전으로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상사회인줄 알면서도 고집스레 꿈꾸고 있었던 터다.

 

아가씨는 자아실현을 위하여 같은 이념으로 꿰여질 동지를 찾았으나 고담준론(高談峻論)으로 날을 밝히던 동문동창들과 뜻을 같이하겠다던 친구들은 패전의 낌새를 알아차린 휘하의 졸병처럼, 아가씨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 둘씩 새어 시집가고 장가갔다. 아가씨는 홀로 남아 외로운 고민을 하던 무렵에 굳은 의지를 갖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친구를 만났다. 그는 아가씨가 자란 환경과는 상반되는 어려운 내력의 집안에서 태어난 청년이었지만 명석하여 손꼽힐 최고학부를 졸업한 사람이다. 둘의 관계는 함께 꿈꾸던 이상향을 만들기 위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고독과 두려움과 은신의 장소로, 때로는 불안해서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려, 서로의 거처를 찾았다.

 

발붙일 곳 없던 '유신'시절에서 그들에게도 더는 움츠릴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서 있었다. 피차의 위로가 될 육신의 보금자리, 결코 허구일 수 없는 이상적 사회를 지극히 작은 서로의 마음으로 파고들어 실현시키고 있었다. 시퍼런 작두 날 위에 올라서는 무녀와도 같이 아가씨는 진보적 사회상을 이성 안에서 찾고 있었다. 남편은 학생 운동가였고 아가씨도 신들린 무당처럼 날뛰었지만 토양은 그들의 씨앗을 움틔울 수가 없도록 각박했다. 격리의 높은 담장 안을 몇 번인지 들락거리고 난 후, 아가씨는 식을 올렸다.

 

근면을 외면하지 않는 세월은 수양딸의 처지를 곱고 알진 밤톨주부로 만들고, 더하여 과거를 씻고 아가씨를 찾을 만큼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했다. 수양딸은 수소문해서 아가씨의 결혼예식장을 찾았다.

 

세월이 흘렀으니 아가씨의 아버지도 아가씨의 할아버지도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알만 한 사람은 꽤 있었다. 수양딸은 자신의 결혼식을 생각하면서, 과히 공주의 결혼식답게 성황이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들어섰다. 호화로운 궁전은 아닐지라도 돋아 보이는 호텔쯤은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은 빗나갔다. 서울 중심에 자리한 신축건물의 깨끗이 단장된 새 회의실을 가득 메운 하객들은 신랑 측 친구들을 빼고는 모두가 아가씨친정인 시골에서 온 분같이 시골티가 났다. 많은 이가 밭고랑 같은 주름을 이마에 새겼고 햇빛에 익은 얼굴은 풋풋한 푸성귀 냄새를 풍기듯 싱그러웠지만 어딘가 덕망의 흔적을 찾을 길 없었다. 어쩌면 아가씨가 원하는 이상향에서 온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세대를 달리하며 새로운 사조에 도취한 어색한 젊은이들로 가득 차, 식장에 흐르는 기류는 사뭇 어색했다. 짧았지만 수양딸이 아가씨와 있었던 그 옛날과는 완연하게 다른 분위기였다. 수양딸의 기대와 너무나 동떨어진 결혼식이었다.

 

수양딸은 마음이 아팠다. 수양어머니는 저 멀리 앞에 계시는데 찾아 가 뵙기에는 어쩐지 자기위치가 너무나 못 미친다. 그 거리는 객석의 거리를 훨씬 뛰어넘어서 아득히 저 멀리 있는 것 같았다. 객석의 손님들 중에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있다고 하드랴도 자기를 속마음으로 반겨줄 사람은 어쩐지 없을 것 같았다. 뿐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시기할 것만 같은 두려움조차 들었다. 수양딸은 아무에게도 다가갈 수 없었다. 이를 악다물고 살아온 세월의 아픔을 아무도 알아줄 사람이 없을 것 같은 허무감도 몰려왔다. 이 결혼식에 과연 하객으로 참석한 의미를 어디서 찾을 것인지 의문도 들었다. 그동안 숨어 살아온 내가 이제 무엇 때문에 지난날의 생각에 눈을 어리면서 나와는 동떨어진 예식의 격차를 지켜보아야 하는 것인가? 수양딸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곱게 살아온 아가씨의 지난날을 내가 시기할 이유야 어디 있겠는가? 지금의 아가씨는 예전의 아가씨가 아니다. 지금의 나 또한 예전의 수양딸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가씨와 자기의 틈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신분의 차이를 좁혔다. 다만 세월의 틈만 있을 뿐이다. 오히려 서 있는 자리가 완전히 뒤바뀌어진 아가씨와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의 어려웠던 지난날이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다가오고 있었다.

 

눈물이 어렸다. 자기보다는 아가씨가 훨씬 잘 되어야 할 텐데 왠지 불안했다. 주어들은 아가씨의 행적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양딸은 으레 있는 피로연엔 가지 않았다. 하객들 중에 자기를 아는 사람들의 물음에 일일이 대답해야하는 칭찬과 수모의 과거를 일깨우기가 싫어서였다. 수양딸은 내심 여기 있는 하객들이 자기에게 감히 지난날을 물을 수 없을 만치 격이 달라지고 엄두를 못 낼만큼 달라지는데 까지는 미치지 못했음을 한탄했다. 오히려 그렇게 되었더라면 기꺼이 다가 갈 수 있었으리라. 수양딸은 침식을 같이하고 미래를 의지했지만 몰락의 집안에선 이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찍 시집을 갔고 어렵사리 실림을 일구었기 때문에 아가씨에 대한 부담은 없지만 어릴 때의 정들었던 이 아가씨와의 사이를 잊지 못할 판이다. 그래서 수양딸은 아가씨가 지금은 자기보다 못하지만 자기보다 훨씬 낳아야한다고 생각해서 이 결혼식에 와서 축하하고 아가씨의 미래를 축복해 주는 것이다. 앞으로 아가씨의 결혼생활은 평탄 할 것인가? 알량한 공부 때문에, 이상의 실현을 위해서, 더 많은 시련과 고통을 받을 것인가? 몹시 불안했다.

 

몇 년 뒤 수양딸은 아가씨의 올케의 주선으로 아가씨가 사는 집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아가씨는 그사이 아들 하나를 두었고 그 아들은 아직 초등학생이었다. 그런데도 아가씨는 아들을 데리고 시골로 내려가서 어떤 형태인지 자세히 알 수 없는 집단생활을 한다는 것이었다.

 

승용차로 한나절이나 걸려서 당도 한 곳, 서해가 멀리 보이고 소나무가 우거진 얕은 산허리를 타다가 미끄러지듯 흘러갔다. 내리막 길 양쪽은 우거진 소나무터널로 길게 이어졌고 소나무 향은 수양딸의 두 코 구멍을 동굴처럼 벌름거리게 했다. 우거진 자연송림이 한동안 마셔보지 못했던 자연의 달콤한 향기를 수양딸에게 퍼부었다. 하늘의 문을 열고 내리 쏟는 태양이 뾰족한 소나무 잎 사이를 흘러서 만들어낸 빗살무늬가 수양딸에겐 한층 신비롭게 느껴졌다. 솔잎은 아가씨의 마음을 읽어 내리는 축음기 바늘처럼 미세하고 날카롭게 진동했다. 수양딸은 흥분에 싸이기 시작했다.

 

환하게 비친 햇빛아래 함지같이 옴팍한 평지가 나타났고 거기에 창고 같은 건물이 나란히 몇 개 서있었다. 부속건물이 몇 개 더 있는데 한곳은 양계장이었고 다른 한곳은 창고를 겸한 예비 건물로 지어진 것 같았다. 나머지 건물은 두 곳으로 갈리어 세 채씩 나뉘어 있었고 거기 한 집에는 남자들이 살고 가운데 식당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여자들이 산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따로 모여서 한 지붕 밑에서 지낸단다. 마치 병영과 같은 이 시설의 각 내부에는 먼지하나 없이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누구를 막론하고 주방에 들어갈 때에는 입구에 준비된 수돗물에 얼굴과 손을 씻고 다시 소독수에 손을 담가 소독한 다음 들어가도록 엄격한 규칙을 만들어놓고 있다. 각 침실에 들어갈 때에는 양말을 벗고 반드시 덧신을 신어야만 들어갈 수가 있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지낸다고 한다.

 

종교집단이 아니면서 모두들 각자가 소유한 집을 팔아 정리하고 이곳에 맡기고, 그 돈으로 공동의 운영수익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교육은 이런 집단의 본산인 일본의 ‘어느 현’의 본부에서 고등교육을 전담한다고 한다. 이곳은 온전히 무소유의 집단생활이다. 가두어 기르는 양계장과 달리 여기의 양계장은 놓아먹이고 환기는 완전히 자동 조절되도록 한 현대식 시설이었다. 한 바퀴를 돌아서 산 밑에 마련된 장독대로 가보았다. 거기엔 셀 수없이 많은 장독이 늘어있는데 모두 된장과 간장이라고 한다. 직접 메주를 쑤어 만든 자급의 현장이다. 더러는 주문에 의해서 맞춤 생산도 한다는 것인데 장맛이 좋아서 독은 해마다 늘어난다고 한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아가씨는 그동안 많이 수척해있었다. 이곳에서의 건강관리는 모두 자체시설에서 관리하지만 굳이 어려운 때는 일본으로 데려간다는 간단한 설명인데 수양딸은 얼른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자기생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현실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허지만 내가 여기에서 생활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단정할 수 있겠는가?

 

수양딸은 점심을 먹으러 아가씨와 함께 식당에 들어갔다. 밥 국 반찬 모두 제 손으로 담아 먹어야하고 그릇도 제 손으로 씻어서 정한 곳에 일정하게 놓아야한다. 끼마다 새로 지은 밥과 새로 만든 반찬이니 입에서 저절로 녹았다. 수양딸의 눈에 비친 음식은 겉보기에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는데도 그 맛은 이제까지 먹어보지 못한 특별한 맛이었다. 여기 사람들은 별난 세상에서 별난 음식을 먹고 별난 생각을 하면서 별난 재미로 살아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수양딸이 아가씨를 도와줄 길은 이것 된장밖에 없음을 눈치 채고 들 수 있는 만큼 여러 몫을 만들어서 차에 실었다. 그리고 아가씨의 올케와 함께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함지박 평지에 그늘이 반이나 드리웠다. 산새의 울음이 절절히 수양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가씨의 앞날을 가늠케 하는 지금 사는 이 모습이 무엇을 알려주는 것일까! 보통사람과 사뭇 다르게 자란 아가씨가 반전(反轉)하여 비장한 각오로 여기까지 온데는 반드시 곡절이 있을성싶었다. 아가씨의 결의가 없고서는 결코 자기의 집을 팔아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데리고 합류해 올 수 없는 것이다. 아가씨의 몸에 배인 이곳 생활이 어쩌면 아가씨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른다. 나타난 얼굴빛으로 보나 수척한 몸매로 보나 결코 만족한 생활일수는 없지만 아가씨의 일생을 던진, 아가씨의 신념에서 찾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공동체임을 자족하는지도 모른다. 한 번 잘못 들어선 길에서 돌이킬 수 없도록 냉담 하는 사회의 경직성, 버림받은 사회로부터 치유 받고 재생할 충분한 토양이 없는 여기, 이 땅에서 어쩌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수양딸의 머리에 어딘지 모를 불안감이 일었다. 수양딸의 생각은 저 새파란 소나무사이에 기를 다해 뻗어 올라가는 넝쿨처럼 뻗어 간다. 머리를 흔들어서 곁가지를 한사코 처내는데 넝쿨나무가지는 처낼수록 더욱 무성히 돋아났다. 생각의 넝쿨, 자기로선 상상할 수 없는 아가씨의 오늘과 내일의 향방이다.

 

아가씨의 결혼생활은 여기서도 이어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부부생활은 어떻게? 원만하게 될까? 수양딸이 본 이곳 어디에도 부부의 방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감히 아가씨의 사생활을 입에 담을 수 없어서, 의문으로 남기고 떠나오는 아가씨의 올케나 수양딸이나 함께 여기까지는 참아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아가씨부부는 자기들 이상(理想)의 실현을, 마치 의사들이 치료의 방법과 그 약효를 시험하기 위하여 직접 자신이 그 임상실험의 대상이 되듯이 그들도 자식을 희생 제물로 삼고 사랑하는 상대를 제물로 삼아서 이 작은 공동체의 형성유지에 참여하는 것은 아닌지! 이 사회를 저주하며 은둔의 생활을 하고 있지나 않은지! 수양딸의 마음이 점점 가라앉았다. 마을이 점점 어둠에 싸여 멀어져 가지만 아가씨의 얼굴은 선명하게 드러나고 미래를 말하고 있었다. ‘이것은 잘못된 내 인생행로다.’ 고.

 

아가씨의 결혼예식장의 기억과 이제 막 보고 온 건물은 무척 닮아 있었다. 기다란 방, 휑하게 뚫린 내부, 사람들의 동떨어진 행동, 모두가 빗나간 살의 낙점과 같이 표적에서 멀리 있었다.

 

얼마 전에 만나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녀, 그녀는 남의 집 수양딸로서 살았으면서 인연 맺은 아가씨를 어쩌면 그토록 마음을 비우고 연민의 정을 가질까! 유식과 무식의 차이가 아니기를 바란다.

 

나 또한 내 인생에서 아가씨에 버금가는 연민의 대상이 있다. 깊은 구렁에서 하늘을 올려본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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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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