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프리즘 2008. 10. 2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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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높고 낮은 모든 구조물을 잿빛으로 물들였고 그 구조물 틈에서 살아 우글거리는 모든 것들을 짓눌려 가라앉혔다.

 

언덕길의 갖가지 차들도 숨을 할딱이며 기를 쓰고 오른다. 오늘이 있어서 내일을 꿈꾸는, 군상(群像)의 지겨운 하루가 또 시작 됐다.

 

삶의 언덕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형님의 마음도 회색으로 물들은 나날이었을 것이다.

 

오늘 날씨 같은 어두운 나날이 하루 같았을 형님의 마음을 손등의 솜털마저 간질일 바람이 스치는 맑은 하늘의 마음으로 바꾸어보려는 아내의 스스럼없는 결단, 집안 사정의 농도(濃度)에 녹아 자기 몫을 다하려 뛰어다니는 열의, 이런 것들이 얽혀서 마침내 그 실마리를 풀어 보려는 오늘이 있었으니 음산하고 을씨년스런 날씨인들 반드시 개지 않으랴!

 

이제 서로의 마음이 한 초점으로 모아서 응축(凝縮)되어 한 덩어리로 구를지, 아니면 빗나가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한 점으로 허공에 남았다가 그대로 사라질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마치 날씨가 오늘을 고비로 비가 오든지 아니면 화창하게 개든지 하기를 바라는 군상의 기대처럼 그 속에 함께 하는 형님도 임계(臨界)점에 도달하여 맑거나 비에 젖은 마음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비탈길에 세워진 큰길가의 건물의 일층의 찻집 문은 서너 개의 계단을 밟고 내려서서야 열렸고 바로 앞에 어둠 컴컴한 방의 나직한 천장이 날씨의 무게를 더하여 내리 깔렸다.

 

거기서 아내와 함께 창가에 자리 잡은 중년 여인을 볼 수 있었고 형님과 나는 주저 없이 마주 앉았다. 그리고 나는 창가에 자리 잡은 아내의 마음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피차의 신상을 이미 교환한 터라 굳이 대화의 필요성은 없었다. 단지 성격과 외모만이 주된 착안점이 될 법한데, 우리 내외가 그 분들의 가려운 곳을 긁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저 애꿎은 날씨만 탓하게 됐다.

 

어정쩡한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려니 이런 고역(苦役)도 있나 싶다.

 

있어야할 자리의 사람이 비어있는 형님의 처지에서 아랫사람에게 이런저런 일로 신경을 쓰게 하는 것이 무던히 부담되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형님은 마음에 없음에도 기꺼이 아내의 이번 주선에 토를 달지 않았다.

 

무거운 짐을 싣고 간신히 고개 마루에 오른 기관사 심경의 아내를 이미 읽은 난 그래서 이 일의 마무리가 예단되었다. 그러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우리내외는 미리 나왔고, 상대에 대한 형님의 평은 ‘형수에 비하여 덕성스럽지 못하다’는 그 한 마디였다. 이로서 형님은 아내에 대하여 모든 짐을 벗었고 홀가분하게 맑은 날의 보람을 차지하게 되었다.

 

아내는 형님의 마음을 형수에게로 한 발짝 다가서게 하는 통과의례로 여겼고 형님의 임계(臨界)점에 다다르게 하는 작은 역할을 스스로 맡았다. 형님의 아집(我執)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형수와의 사이는 급진전되었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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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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