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을 추스르려는 노력은 계속 이어졌다. 아내는 어느 날 틈을 내어 조카들이 깃들은 집을 방문했고, 나는 예외 없이 그 길을 따라나섰다.
습기가 밴 부엌에서는 노란 냄비가 뚜껑을 들썩이며 김을 뿜어내고 있다. 보아, 금방 우리의 인기척이 있어서 나올 것 같은데도 우리가 문턱을 넘어서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열어젖힌 문으로 방안이 훤히 보이는데, 아무도 나타나질 않는다. 그 문턱에 우리 내외가 걸터앉았다.
난 까맣게 그을린 부엌 천장을 올려보고 내 마음을 그려보았고, 손목시계를 내려 보며 이 집의 유달리 어려운 때를 짧게 하고픈 조바심에 몸을 떨었다. 반드시 벗어나리라. 그리고 빨리 잊어버리리라. 이런 심경(心境)에서, 무겁게 매달린 납덩이를 벗으려 오늘도 여기까지 온 것이다.
잠시를 기다렸다. 정오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 때 난 일어서서 한데로 나가서 집 주위를 돌아보았다. 길가의 공터에는 손바닥만 하게 맨흙이 드러나 있고, 거기에는 드문드문 푸성귀가 돋아있는데 그 바로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손가락을 모아 풀을 뽑고 있는 애들 누나를 보고 소리쳤다. ‘무얼 하세요?’ 옆을 돌아보고 계면쩍어했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나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아마도 아내와 미리 연락이 있었나 보다. 나직이 들려오는 누나의 목소리는 놀라지도 않고 당황하지도 않은 채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그는 한낮의 생 꿈을 꾸고 있었나 보다.
모두 추측할 따름이다.
누나는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곱게 자란 품성이 반듯한 아이였다. 하지만 형편 때문에 자기를 억제하는 전형적인 우리네의 옛날 처자의 위치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던 차에 아내의 수소문을 듣고 자기의 의견을 명확히 하고, 조카들을 돌보기로 했나 보다. 보수는 사양하고 아이들의 어머니 노릇도 마다하지 않을 각오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언니는 어떻게 하든지 가난을 벗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가난이 혼자의 힘으로 벗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우선은 자기라도 길을 터 보려는 심산으로 아무도 없는 서울이지만 아내의 고향 뿌리에 곁뿌리 붙여서 뻗어보려고 결심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든지 가난을 면하려는 안간힘의 소산일 수도 있고 설사 그 일이 잘 안된다 하더라도 서울의 입소문을 쉽게 얻어들어 어디에고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는 바람도 없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래서 언니는 걱정과 근심의 늪을 깊이 파 눈에 새기고 있다.
처음 보는 내게야 초면이라서 그렇다 치고, 몇 번인가를 보았을 아내에게도 다소곳이 인사만 하고 입을 열지 않는, 무언의 비밀단지다.
대체,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겠다. 몇 달인가를 그렇게 아무 탈 없이 지났지만, 누나에게 아무런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자기를 희생하고 어떤 형태로든 변하고 싶었든 언니는 오늘도 푸성귀 이파리와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을 것이다.
한참 후에 조카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아무 말 없이 점심상을 차려주는 누나의 형체는 분명 여자이다. 비껴보면 언니이고 조금 물러나 보면 어머니이고 더 멀리 떨어져 보면 장기 파출부고, 또 뒤돌아보면 이웃 아주머니가 되는, 애매한 자리가 되어 오늘도 해를 보내고 있다.
언니는 어느 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 뒤에 형을 만났을 때 형님의 말씀 한마디가 지금도 작게 메아리 처 온다.
“‘누나’는 이지(理智)적이야”/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