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86.040919 감정
두 아이의 다툼은 이내 끝났다. 다툼은 놀이터의 모래밭에 떨어진 하찮은 빨간 색종이 한 장 때문이었는데, 키 작은 여자어린이가 키 큰 남자어린이를 꼬나보았을 때 남자 어린이의 눈살과 여자어린이의 눈살이 막 부닥치면서 바로 남자 어린이의 동작은 멎었고, 눈총을 피할 수 없는 남자 어린이의 입이 크게 열리면서 울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남자 어린이가 여자어린이의 얼굴빛으로만 그의 의지를 알 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남자 어린이는 여자어린이의 눈총까지 맞지 않았을 것이고 울음보도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 어린이의 얼굴빛이 확연하게 그 의지를 들어내고, 남자 어린이는 그 의지를 읽을 수 있었을 테니 훨씬 매끄럽게 다툼 없이 넘어갔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가정할 때, 우리 인간도 카메레온처럼 감정의 색을 노출시킨다면 사회는 훨씬 더 부드럽게 돌아 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헌데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사람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도 자기 의사를 표현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면, 숨을 들이 키고 한 박자 쉬면서 다음을 생각해야 할, 진지한 몸가짐을 하게 된다. 깃을 여며 가면서 들어야 할 것 같은 소리, 그런 소리가 잔잔히 들린다.
어린이들의 경우는 결국 감정, 자기의 의사를 상대에게 전하기전에 행동으로 옮겨가는 단순성 때문에 그렇게 될 것이고, 그렇게 눈총이 부닥치지 않았더라면 그 다음 단계인 주먹다짐이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적이 그나마 다행한 결말이다. 여자어린이가 나이 한 살 많은 것도 겉으로 드러났더라면 키 큰 남자어린이는 공손히 물러났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물러난 어린이는 다음 연계된 동작을 포기하고 이내 화해의 길로 들어갈 것이다.
카메레온과 같은 감정노출 피부를 갖지 못한 우리 인간이 자성할 부분, 어떠한 형태로든 상대의 의사를 읽을 수 있는 예지를 발휘해서 최소한의 짧은 말로서 아우를 수 있는 어린이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또 엉뚱한 생각으로, 우리가 해마다 보는 장마철에 쓸려 내리는 진흙이 보는바와 같이 쓸려내려 가기만 한다면 강토는 어떻게 되며 넘치는 바다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늘 무너질까 걱정하는, 이런 우려를 말끔히 씻을 수 있는 것은 자연의 복원 능력일 텐데, 그래서 있을 자리로 가는 것인데, 우리 인간도 이런 무한능력의 세계에서 살면서 그렇게 제자리로 찾아 갈 수는 없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어린이들의 갈등이다.
필경 무슨 수 가 있을 것 같은데 우리는 그 수를 두고도 어쩌면 모른 체하고 둘러 가는지 모른다. 운행되는 질서를 에둘러 살려는 인간들의 몸부림은 인간 스스로를 파멸하게 할지도 모른다.
두 어린이의 일촉즉발의 위기를 모면케 한 것은 물러선 어린이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듯 우리의 삶을 제자리로, 제몫으로 돌려놓는 혜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모래알은 내 살갗, 삶의 흔적.
내 애달픔으로 깎아 낸 조약돌
쓸려내려도 내 머물 곳 있으리.
평안히.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