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 소리가 집안을 훑는다. 승용차로 한 시간을 달려가야 닿는 먼 일산에서 오는 것 같지 않게 굵직한 소리로 또렷하게 그리고 깨끗하게 들려온다. 벨 소리는 소녀의 목소리를 들으려 부르는 소년의 부르짖음같이 맑다. 벨 소리는 멀리서 들려오지만, 그 집 현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는 듯 가까이 있다. 벨 소리는 그 집의 구석구석을 훑어가며 울린다. 어디에도 숨을 수 없도록 후벼 파서 울려 퍼지니 거부하기에는 그 소리가 너무나 맑고 깨끗하다. 이렇게 저쪽이 들려왔다. 고동치는 심장의 소리가 줄을 타고 ‘준이’ 엄마의 방을 울렸을 것이다.
세 번째의 울림이 짧아지며 달가닥 플라스틱 소리가 나더니 사람의 쉰 소리로 바뀌었다. 난 벽에 부닥친 듯 아찔했다. 짜릿하게 몸이 조인다.
조금 전에 ‘준이’ 엄마 핸드폰으로 걸었을 때는 부름의 소리가 허공에 날아가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유선전화의 벨 소리 한 토막이 그쳐도 수화기는 열리지 않다가 세 토막째 울림이 이어지는, 한 길이의 마지막에 수화기를 낚아채는 경쾌한 무기물 접촉 소리가 들리면서 쉰 목소리가 들렸다.
붉게 달아오르는 내 귀밑이 보일 것 같다. 등줄기에 땀이 배고 있다. 벌떡 일어나는 내 등에 속옷이 붙어서 끈끈하게 당겼다. 잘못 걸린 것 같기도 하고 잘못 들은 것 같기도 하여 되물었다. 여보세요? 여기. 그런데 저쪽의 목소리가 전혀 딴 목소리로 변했다. 한결 높은 음이다. 푸른 하늘을 나는 깃털처럼 가볍고 흐르는 냇물 소리처럼 맑게 들려왔다. ‘준이’ 엄마의 목소리에 난 안도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참 엊그제 잘 들어가셨습니까? 카랑카랑하면서 자신에 찬 목소리에 나 또한 힘을 실어 예, 열한 시 반쯤 들어왔습니다. 대답하면서도 지난 일보다는 앞일을 말해야 하는 나의 심사가 매우 어지럽다. 하지만 가라앉히려 힘을 빼고, ‘나 역시 그날 이후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왜요?’ ‘준이’ 엄마의 되물음에 그의 숨은 마음이 실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를 말하려고 전화, 아니 그 이유를 말하려 찾아가려고 하는데 아파트 이름과 동 호수를 몰라서 전화합니다. 내심, 만약 내가 생각하는 그런 ‘준이’ 엄마라서 마음이 흔들리면서 경쾌한 목소리로 변하였다면 집 동 호수를 알려줄 것이고, 그렇지 않고 의례적인 인사치레였다면 전화로 이야기하자고 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핑계 삼아서 오늘의 방문을 거절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준이’ 엄마는 쾌히 아파트 동 호수를 가르쳐주었고, 난 받아 적었다.
아! 이제야 내가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겠구나! 난 이틀 밤을 고뇌로 이은, 그 이야기를 한 톨도, 한 치도 빼고 보탬 없이 이야기하리라! 그리고 엊그제 ‘준이’ 엄마네 집에 갔을 때 내가 지은 죄가 있다면 그 짐을 벗고, 그 상황에 맞는 행동을 그때 취하리라! 다행이다. 내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 그날이 그날 같게 지낸다면 난 죄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고, 내 생각이 옳다면 ‘준이’ 엄마의 밤샘은 더욱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오늘 털어 버릴 수 있다. 이런 생각에 흐뭇했다. 어느 쪽이 됐던 나와 ‘준이’ 엄마가 홀가분하게 나날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내 마음이 한결 가볍다. 달떠있었으므로 서둘러 채비하고 집을 나섰다. 하얀 점으로만 보이는 사색의 긴 굴을 지나고 있다. 잠시 빛을 볼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왜? 애들 이모와 ‘준이’ 엄마가 만나는 데 날 초대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곳에 끼일 처지는 아니다. 하긴 몇 년 전에 ‘준이’ 아빠가 다쳤을 때 애들 이모하고 병문안하러 ‘준이’ 네 집을 찾아간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 방문이 이번처럼 날 불러내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삼 년만의 만남이니 별다른 의미가 있다고 하기에는 그 세월이 너무 길다. 하긴 일 년에 한 번씩, 정초에 내가 안부를 물은 적은 있지만 다른 뜻을 담는 전화로는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이번 단둘의 만남이 나로서는 보통의 의미를 넘는, 상상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준이’ 엄마가 날 부르는 전화에서 '잠을 이룰 수 없다'라는 말, 그 말 한마디에 내 심장이 고동치면서 시작됐다. 그 연유는 이 일이 정리되고 난 후에서야 알 수 있었지만, 그때엔 적지 않은 설렘이 이었다. 밤잠, 그 말속에는 이성의 그리움이 흠뻑 배어 넘치는 듯했다.
올해 들어서 처음, 며칠 전에 걸려 온 ‘준이’ 엄마의 전화 내용은 애들 이모의 전화번호를 알 수 없다며 걸려 온 전화다. 이모가 아주 외국에 이민한다는데 식사라도 하게 해야 하겠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나도 함께할 것을 청했다. 그것은 아마도 이모의 전화를 물으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는 말속에 비친 음식 나눔의 친절, 그 이상은 아니었을지 모를 일이다. 해서 난 그 초청이 내가 부담해야 할 몫이 있을 것으로 자족하고 승낙하고 나섰다. 그래서 내가 애들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서 번호를 확인하여 그 전화번호를 ‘준이’ 엄마에게 알려줌으로써 내 할 일은 한 단락이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모름지기 이모와 ‘준이’ 엄마는 둘이 함께 시간을 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게 ‘준이’ 엄마가 연락했을 것이다.
이렇게 만나는 시간과 장소를 정확하게 알려줌으로써 내 참석이 확실해졌다. 그런데 그런 전화가 있었던 후, 이번에는 약속이 취소됐다는 내용을 알리는 전화가 결려왔다. 그래서 그러면 계획된 것이니 나만이라도 만나면 어떠냐고 의견을 제안했을 때, ‘준이’ 엄마는 이미 그 시간과 장소는 조카들하고 만나기로 바꾸어 놓았다면서 저녁 시간에 대치동의 어느 갈빗집에서 만나자고, 또다시 시간과 장소를 소상하게 알려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애들 이모하고는 시간상 맞지 않고, 애들 이모가 이번에 아주 떠나는 것이 아니고 집 안 정리를 위해서 아직도 여러 번 국내외를 오가야 한다고, 뒤에라도 만날 수 있다고 하여서 취소됐겠다고 하는 생각을 했지만, 굳이 나하고 별도로 약속한다는 것, 나에게는 적이 의아한 부분이었다. 해서 내 생각은 점점 무지개색으로 물들어 갔다. 이 마지막 전화는 저녁 네 시 무렵에 가서야 걸려 왔다.
언제나 시간을 쪼개 쓰는 나는 약속 시간인 여섯 시가 다 돼서야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촉박한 나머지 일상적 외출과는 달리 택시를 타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정말로 이례적이고, 예의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었다.
그는 약속된 자리에 이미 와 있었다. 그것도 모른 난 밖에서 서성이며 몇십 분을 기다리다가 전화로 확인함으로써 만날 수 있었다.
전화가 끊기는가 싶더니 곧바로 달려 나오면서 반긴다. 정말로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다.
생각보다 넉넉해 보였다. 반기는 품이 어색함이 없다. 고동치던 내 심장을 재우고 일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넉넉했지만 예상치 않은 만남이라 얼떨결에 손조차 잡아보지 못한 것이 식사 시간 내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음식은 ‘준이’ 엄마의 주도로 주문됐다. 늘 그랬듯이, 남을 우선하는 습성이 오늘의 처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언제나 쓰는 내 버릇 말처럼 내가 내겠다고 하면서 ‘준이’ 엄마에게 주문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격식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 처신은 여전히 그 분야에서 백치나 다름없었으니 새삼 그 자리에서 그 버릇을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기에 그대로 쉽게 분위기에 싸여갔다.
눈가에는 실오리 잔주름이 몇 개가 있는 둥 마는 둥 하다. 화장기를 느낄 수 없었으나 미모에 화장이라도 했더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입술에 눈이 갔다. 연한 연분홍색의 입술은 그의 건강미를 드러내고 있었다. 왜 이렇게 넉넉해지셨어요? 내 딴에는 자극적인 말을 피하려고 둘러 하는 말이지만 그대로 살진 몸으로 받아들여서 넌지시 말한다. 먹고 자고 먹고 자니까 이렇게 몸이 났다는 직언에, 활달한 ‘준이’ 엄마의 마음이 묻어난다.
‘준이’ 엄마의 변은 마치 내 앞에 자기의 알몸을 내놓는 것 같은 느낌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 또한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내 근황을 묻는 ‘준이’ 엄마의 이야기는 듣기에 편하고 쉽게, 외톨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로 풀어갔다. 내 나이 예순셋인데 이제 뭐 친구를 사귄들 누가 뭐라 하겠어요? 외국에서는 부담 없이 만났다가 헤어지는, 편안한 친구 사이가 보통으로 여겨지며 그들은 자기 가족의 크고 작은 이름이 있는 날에 서로를 초대하고 그 자녀들도 거리낌 없이 엄마의 남자친구, 아빠의 여자 친구로 부르며 모이고 헤어지는데 그런 그들이 자연스러운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 나이를 묻는데, 언제나 숨김없이 사는 나는 그대로 내 나이를 말하였고, 내 나이를 듣는 ‘준이’ 엄마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입이 하마처럼 커지도록 놀란다.
난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아니 허우적거려도 이미 잡을 것을 놓친 내 몸이 깊은 소로 잠기고 있었다. 필경 이 만남은 내 나이로 하여 그 틈이 벌어지는구나! 번개같이 스치는 생각이지만 얼굴에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 솔직한 내가 밉고 야속했다. 그로부터 이야기는 자꾸 겉돌며 원심력을 더해 갔다. 구심점은 잃은 헛말만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나도 어떻게 하든지 내 나이를 포장하여 젊게 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그럴수록 점점 변두리 이야기로만 굳어 쌓여 갔다.
'제가 집에다 모셔드리고 가겠습니다.' ‘준이’ 엄마의 이 말이 내게는 '저를 바래다주시겠습니까?'로 들렸다. 내 일방적인 것 받아들임일 수 있겠구나 싶다. 그래서 확인 할 수밖에 없다. ‘아닙니다. 제가 모셔다드리고 올 때는 전철을 타고 오면 됩니다.’ 이 말은 내 의중을 상대에게 간접 전하는 것인데도 ‘준이’ 엄마는 그 먼 곳, 지하철 타는 시간만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거절하지 않고 쾌히 응하는 것이 나를 더욱 설레게 했다.
미리 낸 음식값에 대하여 어색한 기색은 없다. 밖은 이미 자동차 불빛과 거리의 네온간판으로 눈부시다. 난 승용차 운전석의 자리를 고치고, ‘준이’ 엄마는 옆자리에 자연스레 올라앉았다. 길을 안내하는 품이 이곳에 자주 오는 듯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친구들과의 모임으로 이곳에 한 달에 한 번씩은 온다고 한다.
내 오른쪽 손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왜 이럴까? 내 마음은 지극히 평온하면서도 불안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 텐데 할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는다. 내심, 나는 환상적인 드라이브를 한다고 하든지 또는 지금 나는 제가 세상에 가 있는 애들 엄마와 함께 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있다고 말하든지, 아니면 ‘준이’ 엄마의 손이라고 덥석 잡음으로서 좋은 느낌입니다. 가 절로 나오도록 해야 할 터인데 전혀 멋없게, 뻔히 아는 앞길이건만 모르는 척하면서 길만 묻고 있다.
밀폐되고 어색한 차 안 공기를 바꾸려면 어떻게든 해야 하련만 지금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역시 내 재주의 한계를 자인할 뿐이다. ‘준이’ 엄마는 밤길을, 그것도 한 시간이나 달려야 하는 거리를 혼자 운행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서 홀가분하게 가는지는 몰라도 난 지극히 긴장의 순간순간을 이어간다.
집에 가서 취해야 할 행동은 어떤 것인가? 당돌하게, 무모한 반응을 보여 줌으로써 내 마음을 드러내야 하는가? 아니면 ‘준이’ 엄마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응해야 하는가? 짧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전철역에서 내려주시면 거기서부터 제가 몰고 가겠습니다.'가 귓밥을 때린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또 망설인다.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가? 망설이는 순간에 ‘준이’ 엄마는 곧이어 입을 열었다. 제 마음을 알아보려 했던 지 아니면 잘못을 표현한 것으로 알았던지 그도 아니면 예의로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집에 가서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지요, 라는 말이 이어 나왔다. 난 반기면서 '그래요?', 기쁘기도 하고 희망이 보이기도 한 그 말, ‘준이’ 엄마의 마음이 바뀔까, 싶어서 얼른 봉합의 못질을 했다. '그렇게 합시다.' 이제 나는 ‘준이’ 엄마와 단둘이 있을 시간을 확보한 셈이다. 이 황금 같은 시간을 어떻게 적절히 구사하여 진실한 내면과 색깔을 확인할 수 있을는지, 마음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갔다.
이리 갑니다. 여기서 좌회전합니다. ‘준이’ 엄마의 입에 딸린 내 손은 행들 돌리기에 곧 길드는 듯했다.
한번 들러 본 적이 있는 낯설지 않은 방들이다. 다만 안에 놓여 있는 가구들이 어울리지 않게 공간을 좁힌 것이 다를 뿐이다. 이내 그 생각이 제대로 잡히도록 ‘준이’ 엄마는 먼저 설명해 준다. '딸들의 짐이 우리 집에 와 있어요.'
유자차가 나왔다. ‘준이’ 엄마는 ㄴ자로 배치된 안락의자의 다른 의자의 한가운데 앉아있는 나와 가까이 앉으려고 옆 의자의 내 쪽으로 바짝 다가와 앉지만 ‘준이’ 엄마의 의자와 내가 앉아있는 의자 사이에는 듬직한 팔걸이가 격자를 이루고 있으니, 태산이 가로놓인 셈이다. 그때 내가 옆자리에 오도록 권하지 않은 것은 내 잘못으로, 뒤에 후회할 정도가 되었다. ‘준이’ 엄마는 나를 이성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그냥 아는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그것을 모르겠다. 내 절제된 행동에 ‘준이’ 엄마가 움츠리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내 마음을 십분 전하지 못했을뿐더러 어정쩡하게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 할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 난 깊고 내밀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것은 두 집안 사정이 너무나 드러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르고, 또 누르고 말 한마디 못 하고 말았다. 단지 ‘준이’ 엄마가 앞서 말한 지하철역에서 내려주면 내가 끌고 가겠다고 한 말과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라고 한 말 사이를 헤맬 뿐이다. 그 말이 다른 표현, 즉 시간도 없으니 내일 새벽차를 타게 해 달라는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과 이중 교차하면서 혼란스러웠다. 자고 가겠다고 했을 때 준이 엄마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가늠해 보지도 않고 그냥 돌아가는 내가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혼란스러웠다.
‘준이’ 엄마는 다시 나를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었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지나치게 반응하고 내 생각과 감정에 실어 ‘준이’ 엄마를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전철을 타고 오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도무지 ‘준이’ 엄마의 속셈을 알 길이 없었다. 반색하는 말투, 목소리가 갑자기 카랑카랑하게 변하는 그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돌아온 나는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그 이튿날도 헤어나지 못했다. ‘준이’ 엄마의 포로가 되어 있는 나를 해방하는 길은 무엇인가? 토로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외형적인 장애는 무엇인가? 앞으로 내가 취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인가? 이런 것을 결정하지 않고서는 혼란스러운 내 머리와 감정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준이’ 엄마네 집을 나올 때 가까스로 내뱉은 말은 '준이 엄마! 답답하고 풀리지 않을 때는 언제든지 전화하세요!' 듣는 ‘준이’ 엄마로서는 도무지 내 말의 뜻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을 것 같은, 내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은 말을 던지고 떠난 나였다. 단지 말끝에 내민 내 손, 동시에 ‘준이’ 엄마가 함께 내민 그 손을 덥석 잡고 한참 잡아 준 것뿐이었다. 그리고 표를 개찰구에 넣고 들어가면서 뒤돌아보았다. 눈인사가 꽤 오래 오갔다. 붙들지 않는 ‘준이’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몹시 섭섭했었다. 짐짓 발을 멈추고 ‘준이’ 엄마를 돌아봤다. ‘준이’ 엄마는 고개를 숙이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후회하는지도 모르겠다는 내 지레짐작이 틀리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심호흡했다. 손끝이 다이얼의 도드라진 단추에 닿았을 때 마음도 눈도 ‘준이’ 엄마의 입가를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첫 단추도 만져보지 못하는 상태다. 아직 많은 단추가 내 손길 앞에 가득히 놓여서 앞으로 닥치는 상상의 길에 놓일지 모른다. 호흡을 가다듬고 첫 단추를 끼기 시작했다. '돌아온 이후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특별한 감정 탓인 것 같아서 이야기도 못 하고, 그 실마리를 풀어서 정리할까, 하여 방문하고자 하는데 찾아가는 길과 동 호수를 일러 달라고 전화합니다.'라고 했을 때 호쾌한 웃음과 함께 정확히 두 번 세 번 일러주고, 다른 약속이 없다면 지금 방문하고 싶다는 내 말에 티끌만 한 토도 달지 않고 응하고 있었다. 변명의 눈치는 아예 찾을 수가 없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반색하는 ‘준이’ 엄마는 전번에도 그랬듯이 너그럽다. 그런가 하면 넉넉하고 복스럽다. 신을 벗고 손에 들고 들어온 딸기를 마루에 놓고 나서 양팔을 넓게 벌렸다. 그리고 눈을 똑바로 ‘준이’ 엄마를 보았다. ‘준이’ 엄마는 망설이지 않고 안겼다. 그러나 내 머리는 그의 등 너머에서 턱은 그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준이’ 엄마는 잠시 후 분명하게 허리를 빼었다. 이것이 내가 알아차려야 할 신호인 것을 알았다. 서양 사람들의 인사법 같은 것으로, 끝나는 내 첫 단추는 끼이다 만 것, 다시 풀리고 말았다.
굴 밥집에서는 그저 친구들의 일상적인 만남처럼 시간을 보냈다. ‘준이’ 엄마의 제안으로 몇 개의 구름다리 같은 육교 위를 지나면서 거니는 산책을 했다. 드문드문 서 있는 건물 사이로 넓은 들판이 보이고 하늘이 활짝 열려있다. 각종 구조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길은 차단, 별천지를 보였다. 착시 착각인지도 모른다.
둘은 말없이 걸었다. 호수공원 쪽으로 얼마를 걸어가다가 내 입이 열렸다. "우리는 산 사람입니다. 산 사람은 산 사람의 도리를 해야 합니다. 성경에 당신을 따르지 못하는 이유로 죽은 사람의 장례를 말할 때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에게 맡기고 산 사람은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하고 싶은 말문을 이었다.
그저께 이후 잠 못 이루는 내 심사를 통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성의 끌림을 느꼈고 그에 대해 확인하려고 오늘 ‘준이’ 엄마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일전에 만났을 때, 혼자된 여자들의 보통 행동 뒤에는 숨은 조건이 따라다님을 내가 말했을 때 ‘준이’ 엄마는 의아해했습니다. 즉 경제적 지원과 생활 보장 같은 것은 피차가 부담을 안길 뿐, 늘그막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면서 말입니다. 나는 경제력이 허용, 아니 준비되질 않았고 그런 면에서 일차적으로 부담되기에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는 내 그간의 생활과 환경을 말할 때 ‘준이’ 엄마는 말했습니다. 친구로서 그냥 만났다가 헤어지고, 또 만났다가 헤어지는 그런 만남이 어울릴 것 같다며, 비록 미국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도 그런 자유로움이 있으면 좋지 않으냐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혹시 ‘준이’ 엄마에게는 허용되지 않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내 물음은 지극히 단순하고 저돌적이었다.
‘준이’ 엄마는 비로써 실토한다. '아주머니가 가신 후 행동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셨나 보지요?' 오히려 반문하는 것이다. '저는 이성에 대해서가 아니라 애들 아빠가 오랫동안 앓으면서 그 뒷바라지하느라 밤과 낮을 섞어 사는 생리 생태로 길들어서 밤잠을 못 이루는데요. 더구나 앞으로 애들에게 어떻게 남은 재산을 정리해 주어냐 하는지가 나를 괴롭힙니다. 고향의 논밭과 작은 사업체의 소유 지분, 집, 그리고 여기 이 집들이 나를 상념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완곡한 거절의 표현에 실망하면서도 어쩐지 내 어설픈 접근에 오히려 나를 책망하기 시작한다. '그런 것도 모르고 난 다르게 받아들였고 그런 연유로 해서 첫날, ‘준이’ 엄마를 바래다 들렸던 날에 그냥 무심하게 집으로 발길을 옮기는 데 대하여 무척 죄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만에 하나, ‘준이’ 엄마의 외로움이 일상적이고 인간적이고, 여성적이었다고 생각하면 말입니다. 그러면 나는 무척 용서받기 힘든 죄를 범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혼자된 이를 홀로 버려두고, 그것도 단둘이 있을 때의 분위기를 타지 못하고 목석같이 행동했으니 말이지요. 그 점이 죄스럽다는 것입니다. 해서 오늘 그 결말을 보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은 사람들에 대한 무례일 수도 있고 그와 반대로 그들이 적극적으로 환영할 만한 거취일 수도 있는, 그야말로 동전의 양면과 같은데, 이 기회의 적극적 선택이 우리 맺음일 뿐이라는 생각을 피력하여 그에 대한 대답을, 행동으로 확인하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내 말은 말로서만 구름처럼 흩어져 날아가고 만다. ‘준이’ 엄마는 발이 아프다면서 발길을 되돌리고 있었다. 이로써 의중이 확인되었다.
우리는 또다시 거실의 소파에 자리 잡았다. 유자차와 딸기가 나왔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애들의 치다꺼리로 옮겨갔다.
물려받은 것들이 한결같게 경제적 가치로는 별것 아니지만, 누대로 이어온 것들이라서 자기 대에서 없앤다는 것이 죄스럽다는 그것과 이런 엄마의 생각과 달리 아들은 현실적 가치를 중시하여 지금이라도 정리해서 장래성 있는 곳에 묻어두자는 주장에 대한 갈등이 밤을 새우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준이’의 주장에 동조한다는 뜻을 단호하게 전했다. 그것은 이즈음의 세태는 시간이 돈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젊은이가 활동할 수 있는 여력과 시간을 주고, 따라서 경제성 있는 곳에 지혜롭게 옮겨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회는 기회대로 확보하는 셈이 되고 제대로 된 상품에는 경제적 가치 상승의 기류가 시간에 편승한다는 것이다. 부도덕한 행위로 지탄받던 시기는 지났다. 집도 땅도 지식도 정치도 심지어 사람도 상품화되는 이 시기에 물려받은 장소의 땅과 집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나는 뇌까린다.
이것은 내가 한 생을 살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명을 이어가는, 내 삶의 전부인 망향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자기모순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를 이해하려는 것, 세태의 변화를 읽어 가야 하는 오늘의 나를 부인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분명히 내 정서와는 다른 숨은 나를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나의 방문목적에서 멀리 떨어져 간 이 이야기의 중심을 제자리로 옮기는 기술이 내게는 없다. 그렇다. 행동으로 옮기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찻잔을 들고 ‘준이’ 엄마의 곁으로 갔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준이’ 엄마의 허리를 감았다.
한참이 모자라는 내 양 손끝이다. 허리의 반을 못 미치는 넉넉함의 ‘준이’ 엄마 통이다. 이제는 진전시킬 수가 없다. 반응이 없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어떤 형태의 반응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난 그저 그의 등에 내 머리를 대고 고즈넉이, 말없이 있을 뿐이다. 잠시 후 ‘준이’ 엄마는 고개를 젖히고 나를 내려 본다. 동그랗게 되어 나를 보는 눈이 부드럽다. 아마도 나의 이성에 대한 그리움을 대화로 만족시켜 주는 역할을 자임하면서 내 행동에 어느 선까지를 인정하고, 허용하는 것 같은, 그런 눈빛이다. 나는 더 무모한 몸짓을 계속할 수가 없다. 무뢰한이 되건, 한을 씻는 씻김굿이 되건, 모두 나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그 기준은 온전히 ‘준이’ 엄마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때 ‘준이’ 엄마가 작은 반응이라도 보였다면 아마도, 아마도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내 안의 용융(熔融)은 이성(理性)의 제동에 냉각(冷却)되기 시작했다. 자세를 고쳐 앉아 다시 변죽을 울리는 이야기로 겉돌고 있었다. 때마침 누군가의 전하가 ‘준이’ 엄마에게 걸려 왔다. 내가 먼저 시험했다. 볼일이나 혹은 약속이 있는가 본데 이제 가봐야겠습니다. ‘준이’ 엄마는 아무런 말이 없다.
함께 지하철역까지 가면서 말한 ‘준이’ 엄마의 한마디가 아직 여운을 남긴다. ‘답답할 때 연락하겠습니다.’ 진원은 내 말인데 무슨 뜻인지 나도 모르겠고, 또다시 미궁에 빠진다.
가볍다. 해방감으로 상쾌하다. 죄의 굴레를 스스로 벗어던졌다. 그러나 여운은 여전히 남는다. 우린 실존에서 서로 다른 허상을 실체화하고 싶은 욕망에 잡혀있으면서 실체화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작별의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든지 답답할 때 연락하겠습니다.’
여운이 감돈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