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을 다녀오는 길에서 우연히, 아주 우연히 티셔츠 왼쪽 주머니에 손이 닿았다. 이만 원이 들어있는 것, 잊었던 물건을 찾은 듯 기쁨이 새삼스레 넘쳤다. ‘살강 밑에 숟가락 줍기’의 속담이 생각난다. 아직 이 속담의 참뜻을 실감하지 못했었는데 이 순간에 그렇게도 이 속담이 눈앞에서 뒤집히는, 반전의 의미로 역전될 수가 있을까 싶게 기쁘다.
‘내 집 숟가락’인 내 돈이 이 순간 그렇게도 절절하게 내 것으로 되어본 적이 아직 없었다. 자기 집 것인데 주워본들 자기 것이니 무슨 이득이 있어서 기쁘겠느냐고, 바보 같은 짓이 아니냐는 투의 속담 이야기인데, 실제로 당해보니 이것은 공것 이상인 완전성이 있고 잃었던 것을 되찾은 기분 이상으로,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 기쁘다.
길을 가다 주운 공것보다 몇 곱절 그 기쁨이 크다. 누가 내 물건을 훔쳐 간 것도 아니다. 내가 내 것을 잊고 있다가 새로 찾았는데도 이렇게 흐뭇하다니. 황홀하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거기 있는 것을, 제자리 그대로 있는 것을, 그래도 이 하늘 아래 있는 것이 틀림없는 것을, 왜 그러냐?
이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의 피상적 말이다. 건망증도 이랬을 때는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좋은 면을 보여주는 한 사례로써 속담의 이중적 의미에 머리를 끄덕인다.
살강 밑에 있는 것이라도 떨어진 그때 주었다면 내내 내 것이고, 잊고 있다가 눈에 띄었을 땐 새롭게 사들인 것이다.
이렇듯 이 세상 살아가는데 우리가 찾지 못하는 진리가 숨어있다. 이렇게 명료한 이치로 가득 차 있는 진리건만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네 탓, 내 탓, 세상 탓만 외며 살아간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