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넋두리 2009. 1. 10. 09:36

글 찾기 (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9552.040116 딸

 

나는 이따금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골몰 할 때가 있다. 그 중에 우리가 쓰는 말의 뿌리, 어원이 무엇일까? 왜 그렇게 부를까? 왜 하필이면 저렇게 부르지 않고 이렇게 부를까?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쓸데없이 이런데 시간을 소비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비로써 내 정신을 차린다.

 

어느 날, 문득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직 초등학생인 딸이지만 어느새 내가 깊은 명상으로 딸을 만나게 하는, 그 자리에까지 와 있나 싶어서 반갑고 기쁘다. 세월의 사계(四季)를 남달리 느끼면서 오늘에 왔지만 앞으로 얼마나 험한 바위산을 더 넘고 시퍼런 소(沼)를 건너야 할지를 생각하면 딸에게 특별한 행운이라도 깃들어 있기를 바라게 된다. 그래야 우리가 기다리는 우리의 집, 평안(平安)이 가득한 곳으로 들어갈 것 같아서다.

 

이렇게 딸에게 위안을 받는 것은 딸이 틀림없이 먼저 간 언니의 몫과 함께 두 몫을 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태어난 숙명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도록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딸은 참으로 내 생을 다듬어 나갈 것 같이 알톨 같은 애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주고 마음을 가볍게 한다.

 

내게 짙고 화려한 무늬의 질긴 다리를 놓고 그 위에 튼튼한 난간을 세워서 평안히 저 건너의 푸른 땅으로 가게 할 딸에게 기대와 기다림이 크다. 잠잠히 커가는 딸은 이따금 나를 흐뭇하게 하는 소식을 아내를 통해 들려주었다. 외할머니가 담배를 꺼내 물면 말씀이 없어도 얼른 재떨이를 찾아다가 외할머니의 무릎 앞에다가 두 손으로 바치는 예쁜 짓을 했다거나 딸이 집안에서 엄마의 심부름을 곧 잘한다거나, 할 때면 딸에 대한 기대는 한 층 높아진다. 그것은 균형을 잃은 우리 가정에 저울추(錐)가 되어 온전히 떠받쳐 주는 구실을 하겠다 싶어서 또 흐뭇했다

 

딸은 내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제 고모, 제 왕고모들에게 곧잘 견주어지고 겹쳐지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서의 나를 한 자리에 놓는 영감(靈感)으로 빠져 들게 하여 한없는 황홀경으로 이끈다.

 

딸은 내게 있어서 작은 기대를 낳게 하고 내가 기댈 수 있는 또 하나의 버팀목이 되어 주길 바라게 한다. 딸은 나를 평안하게 한다. 그것은 미완성의 지금이 이미 완성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고, 내가 사방을 바라보아도 보이는 것은 남매밖에 없는, 그런 감정에 놓이게 하는 우리 집의 바람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한없이 기대고 싶은 딸, 어쩐지 빈틈없을 것 같은 딸의 안정감, 이것은 내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선물인지도 모른다. 딸을 완전히 하기위해 언니인 ‘희’가 짧은 이승을 살았고 제 한 고모가 고난의 병마와 싸웠고 제 또 다른 고모가 시절을 잘못 만나 펴지 못하고 요절 했고 제 왕고모가 청상이 되었는지 모른다. 다르게, 왕고모의 참을성을 이어 받았는지 무던하고 풍성한 성품이 벌써 나타내고 있으니 막연히 딸이 집안의 한 기둥이 되어 줄 것 같아 흐뭇하다.

 

이렇게 내가 흐뭇한 것은 어쩌면 딸이 어느 누구든지 닮아서 ‘따라’간다는 생각으로 이름 지어진 ‘딸’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지극히 그 말이 옳게 이름 붙여진 이름이지 않나 생각하게 되고, 이쯤 이르러서 다시 한 번 양 관자놀이가 당겨지면서 입가가 올라간다.

 

어쩐지 기대고 싶은 딸에게 나는 해 줄 것이 없다. 스스로 다 알아서 할 것 같은 완벽성, 침착하고 사려 깊게 행동할 것 같은 덕성을 갖출 것이 틀림없으리라고 왠지 믿고 싶다. 아직은 인생의 시작이지만, 아직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딸은 내 미래를 보증해 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흐뭇하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 살펴야 할 일이 없는 딸에게 어쩌면 또, 그래서 미안한지 모르겠다. 스스로 알아서 하는 딸이기에 후루루 날아 갈 것 같은 불안도 작게, 아주 작게 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먼 훗날이 일일 것, 지금은 아주 행복하다.

 

딸에게 의지하고 싶을 때 나는 언제든지 앞서간 내 형제 자매와 고종누나들, 그리고 재종 자매들이 생각난다. 그들의 모든 것을 합한 것이 내 딸 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될 때 더없이 행복하다. 이 착각은 그대로 착각일지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

 

‘딸’은 아버지의 생각에 ‘따라’ 성장하고. 아버지의 생각에 ‘따라’ 변해가고, ‘딸’은 이승을 살다간 아버지 혈육의 여자들의 좋은 점을 ‘따라’간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계속 ‘딸’의 성장에 ‘따라’ 흐뭇할 것이다.

 

“우리 집안의 모든 영욕을 함께 하려고 태어난 내 ‘딸’이여! 영광의 그 날에 이 아비가 작은 미소를 짓도록 스스로를 닦고 다듬어라!” /외통-

 



'외통넋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  (0) 2009.01.12
여행  (0) 2009.01.11
인사  (0) 2009.01.01
고래(려)장  (0) 2008.12.30
조손  (0) 2008.12.25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