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외통넋두리 2009. 1. 1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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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자랐다. 여름 낮에는 할머니의 집안일을 참견하면서 귀염 받았고 겨울밤에는 할머니의 젖꼭지를 만지면서 꿈속의 여행을 했다. 이런 나의 갖가지 재롱은 할머니를 망부석이 되지 않고 살아 움직이게 하였고 지극히 작은 보람이나마 찾는 질긴 끈으로 되어 이어졌다. 그러면서 나도 차츰 할머니의 애달픈 삶을 짐작하였고 나름으로 어렴풋한 추측의 한 끝을 할머니와 함께 잡으려다 노치곤 했다. 그래서 궁리했다. 할머니는 왜 할아버지와 함께 계시지 않을까? 이 의문은 철이 들면서 새록새록 더해 갔다.

 

학교와 들판과 산이 내 놀이터로 바뀌면서 할머니의 젖꼭지는 동생에게 물려졌다. 이즈음에 나는 비록 백리부미(百里負米)의 효성을 실행하지 못할지라도 조제모염(朝薺暮鹽)의 궁한 살림만은 면해보려 했고, 격물치지(格物致知)로 치세의 꿈인들 생각이나 했을까만 장삼이사(張三李四)야 제대로 되어야겠다는 소박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몸부림쳤다.

 

공부 한답시고 끝내 집을 나섰으나 제대로 공부도 못하고 결국 전쟁으로 인하여 내가 깔아놓은 어설픈 미래에의 궤도(軌道)는 끊겼다. 그러니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할머니의 지난 일조차 알아볼 기회를 놓치고 허우적거리다가 세월만 보낸 꼴이다.

 

그리움과 설렘으로 일생을 사셨을 할머니에 담긴 의미는 무엇이며 더불어 가난과 싸워 할머니의 한을 풀려고 노심초사하시는 어버이와 여기에서 연유한 우리 형제들의 뜻은 무엇일까? 하여 오늘까지 잊지 않고 지냈지만 여전히 할머니의 젖꼭지에 머문 그 시간에 매달려서 아련히 떠오를 뿐, 분명 내 삶의 참과 얽혔을 할머니의 억울함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하고, 더구나 풀어드릴 나위 없으니 통탄할 일이다.

 

이제 내 꿈은 깨었다. 내 현실적 삶도 해거름에 다다랐으니 할머니와 마주하여 심기를 나눌 수 있는 길이 이승에서는 아예 없다. 마지막 남은 내 상상력으로나마 할머니를 위로하고 이승의 애달픈 삶을 꽃피웠으면 하여 허황(虛荒)한 생각을 한다.

 

나는 내 몸에서 떠난다. ‘쁘랙홀’이라는 것이 있다는 데, 그리로 해서 지구를 떠날 수 있다는데, 그렇게라도 하려한다. 그것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간다는데, 그렇게 할 것이다. 이미 여기까지 온 내 삶의 시간을 그대로 접어 나의 기왕의 존재를 굳히고 내가 시간을 역행 한다면 아마도 내 소원은 이루어질 것이란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할머니도 만나고 할아버지도 만날 것이다. 그런 다음 두 분께 알아보련다. 어찌해서 한 동안이나마 떨어져 지냈으며 그렇게 떨어져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또 어쩔 수 없었던 사연들을 충분히 알고 난다면 이제 그 아픔을 깡그리 아물리고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억울하고 아리던 이승의 삶에 위로가 되도록 재롱이라도 떨며 안겨드리고 싶다.

 

이때에 내가 할 수 있는 재롱이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할머니의 젊음, 아니 갓 시집온 새파란 새댁인 우리 할머니의 모습을 볼 것이다. 그리고 춤출 것이다.

 

이승에서 할머니의 곁을 소리 없이 떠나서 속을 썩인 손자로서 사죄함으로써 또한 할머니의 이승에서의 억울함을 내가 재롱으로 위로해 드릴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같이 살면서 내가 했어야 할, 내 못다 한 것들을 지금의 심경으로 해드릴 것이다.

 

운동과 시간이 문제라던 특수상대성이론을  나는 모르지만 몸을 맡겨 심신을 함께 운반하고 싶다. 하지만 안 된다면 몸은 두고 마음만이라도 스스로 얼마든지 갈 수 있을 것 같아, 기어코 시도하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할머니를 모시고 러시아 벌판을 뒤지며 그때의 할아버지와 관련되었던 모든 사람들을 불러내어서 샅샅이 훑어 알아보고 거기에서, 할머니가 억울하게 사신 지난 이승의 날들을 털게 하시고 모두 다 보상 받으시도록 해드리고 싶다.

 

이것은 꿈일 수밖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 영은 시공의 제약을 초월 할 것인 즉 마지막 남은 내 한 가닥 그리움의 여운을 씻어 보고 싶다. 이것이 아마도 할머니께 대한 못다 한 내 설음을 씻는 몸부림인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몸부림쳐도 아직은 할머니를 뵙지 못하고 있습니다.

 

할머니! 이승에서 할아버지와의 한으로 남아서 그렇게 바라시던 아들며느리와 손자내외와 증손자 내외와 증손녀 내외도 있어 할아버지의 끈을 이어 뜻을 이루셨으니, 살피시어 할아버지와 함께 영생의 복락을 누리소서!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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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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