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외통넋두리 2009. 1. 1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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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9555.040203 아버지

 

병원에 가면 세상 사람이 온통 환자 같다. 그 환자들은 어쩌다가 저런 병을 앓게 되었을까? 또 병자를 수발하는 가족은 얼마나 어려울까?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병마에 시달리는 환자 만치 심신의 고통을 느낄 수 없으니 쉽게 터놓고 환자와 얘기를 나눌 수 없는, 숨은 고통이 가족에게도 따로 있게 된다. 그래서 환자의 가족들은 다른 환자의 보호자나 가족들과 스스럼없이 얘기하게 되고 자기가 돌보는 가족의 병에 대해서 털어놓으면서 상대편으로부터 위안 받기도 하고 위로 해 주기도 한다.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딴 세상에 와 있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숱한 병 이름과 치료의 방법을 듣게 된다. 또 이런 병은 이 병원에서 특별히 잘 고친다거나 저 병원에서 주로 치료하는 의사는 명망 높은 아무개 의사라는 둥 온갖 정보를 주고받는다. 환자의 치유를 은근히 의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심리를 엿보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가족의 병과 그 보호자 가족의 병환을 비교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밑지고 소외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게다가  나는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앓고 계시던 병을 겹쳐 떠올리게 되면 더 없는 괴로움으로 확장된다.

 

이렇게 고향의 부모님에게까지 생각이 미치면 일부러 그 생각을 뒤로 미루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그래도 어찌 할 수 없이 밀려오는 부모님 생각을 내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한 발짝 뒤쳐져서 밀려오는 부모님 생각을 지우려고 딴 짓을 하게 된다. 이야기를 가로 맡아서 씨알도 안 먹힐 소리, 못 고치고 퇴원해서 섭생을 잘 했더니 자신도 모르게 병이 났다거나 아니면 잘못 건드려서 오히려 큰 병을 만들었다거나 하는 소리를 해 대고 싶은데도 참아 가면서 현장을 피한다.

 

우리 가족 환자도 함께 있을 때에 이런 이야기가 있게 마련인데, 이럴 때 내 가슴에 작은 구멍을 뚫는 듯, 아프다.

 

생각은 아무리 재빠르게 멀리 날아도 현실에 미치지 못하고, 하늘을 이고 도리질을 아무리 해봐도 몸은 언제나 제자리인 것을 어찌하랴!  나는 저 두텁고 질긴 보에다가 부모님의 생각을 묻고 살지만 초월적 상상은 언제나 두터운 덮개를 들쳐 올리면서 오늘에, 우울한 날을 이어간다.

 

나는 지금 간절히 원한다. 아버지의 병환이 어떻게 진행되었건, 아버지의 병환이 내가 없는 긴 세월에 말끔히 낳아 부럽지 않은 여생을 보내신다고 하드래도, 기어코 내 힘으로 한 번 입원시켜 드리고 싶다. 그래서 못다 한 아버지께 대한 효도를, 내 허울 좋은 짓이라고 해도 그렇게 해드리고 싶다. 가상으로나마 해 드리며 환자의 가족으로써 남들에게 아버지의 병환을 이야기하며 도리와 삶의 환경을 고르게 펴면서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아버지의 지병(持病)은 위장병이었던 것 같았다. 신물이 오르고 쓰리고 아픈 시간이 지나면 씻은 듯이 나았고 그러면 잠시 한 모퉁이에 가셔서 토하시곤 하셨다.

 

학교에서 돌아와 집안일을 도울 때 보게 되었던 이런 짧은 정경들이 내 평생을 두고 잊히지 않으면서, 요새 같이 좋은 시설을 갖춘 병원을 드나들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내가 아버지께 한 번도 아들다운 도리에서 도움을 드려 볼 기회를 갖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쉽사리 체념할 수 없는 집 떠난 쓰린 내 사연이 있어서 더더욱 간절히 아버지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지금 모실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길을 갈 것이다. 부럽기 그지없는 가족들의 어울림이 내겐 쉬이 뒤틀림으로 와 닿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한다. 한 번쯤이라도 병원 문을 드나들었던들 이렇게 사무치지는 않을 성싶다.

 

둘러앉은 여러 환자 가족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우리 아버지의 담당의사는 아무이고 이 병원에서 오길 잘했다’고 말해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이럴 때 흐른 세월을 압축시켜서 내 떠날 때의 아버지 모습을 내가 보면서 입원시켜 드릴 능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초월하는 능력이 나를 아버지께 인도하여 사죄의 기회라도 줄 순 없을까?

 

뼈에 사무친다.

본연으로 돌아와 현실의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되는, 이 모순된 삶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휠체어를 밀고 나란히 움직이면서 옆 가족을 선망하는 내 이중의 고통을 나는 내 행업으로 여길 따름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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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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