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면 세상 사람이 온통 환자 같다. 그 환자들은 어쩌다가 저런 병을 앓게 되었을까? 또 병자를 수발하는 가족은 얼마나 어려울까? 생각하게 된다.
병마에 시달리는 환자의 고통을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 하드래도 환자만치 심신의 고통을 느낄 수 없으니 쉽게 터놓고 환자와 얘기를 나눌 수 없는 숨은 고통이 따로 있게 된다. 그래서 환자의 가족들은 다른 환자의 보호자나 가족들과 스스럼없이 얘기하게 되고 자기가 돌보는 가족의 병에 대해서 털어놓으면서 상대편으로부터 위안받기도 하고 위로해 주기도 한다.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딴 세상에 와 있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숱한 병 이름과 치료의 방법을 듣게 된다. 또 이런 병은 이 병원에서 특별히 잘 고친다거나 저 병원에서 주로 치료하는 의사는 명망 높은 아무개 의사라는 둥 온갖 정보를 주고받는다.
환자의 치유를 은근히 의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심리를 엿보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가족의 병과 그 보호자 가족의 병환을 비교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밑지고 소외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게다가 난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앓고 계시던 병을 겹쳐 떠올리게 되면 더없는 괴로움으로 확장된다.
이렇게 고향의 부모님에게까지 생각이 미치면 일부러 그 생각을 뒤로 미루려고 애쓰지만,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어찌할 수 없이 밀려오는 부모님 생각을 내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한 발짝 뒤처져서 밀려오는 부모님 생각을 지우려고 딴짓하게 된다.
이야기를 가로맡아서 씨알도 안 먹힐 소리, 못 고치고 퇴원해서 섭생을 잘했더니 나도 모르게 병이 났다거나 아니면 잘못 건드려서 오히려 큰 병을 만들었다거나 하는 소리를 해대고 싶은데도 참아 가면서 현장을 피한다.
으레 우리 가족 환자도 함께 있을 때가 이렇게 된다. 이럴 때 내 가슴은 작은 구멍이 뚫릴 듯 아프다.
생각은 아무리 재빠르게 멀리 날아도 현실에 미치지 못하고, 하늘을 이고 도리질을 아무리 해봐도 몸은 언제나 제자리인 것을 어찌하랴!
나는, 저 깊고 깊은 구렁에다가 부모님의 생각을 묻고 살지만, 초월적 상상은 언제나 두꺼운 덮개를 들쳐 올리면서 오늘에, 우울한 날을 이어간다.
나는 지금 간절히 원한다. 아버지의 병환이 어떻게 진행되었건, 아버지의 병환이 내가 없는 긴 세월에 말끔히 낳아 부럽지 않은 여생을 보내신다고 하더라도 기어코 내 손으로 입원시켜 드리고 싶다. 그래서 못다 한 아버지께 대한 효도를 내 허울 좋은 짓이라고 해도 그렇게 해드리고 싶고 현실적으로는 안 되더라도 가상으로나마 해드리며 환자의 가족으로써 남들에게 아버지의 병환을 이야기하고 도리와 삶의 환경을 고르게 펴면서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아버지의 지병(持病)은 위장병이었던 것 같았다. 신물이 오르고 쓰리고 앞은 시간이 지나면 씻은 듯이 나았고 그러면 잠시 한 모퉁이에 가셔서 토하시곤 하셨다. 학교에서 돌아와 집안일을 도울 때 보게 되었든 이런 짧은 정경들이 내 평생을 두고 잊히지 않으면서, 요새같이 좋은 시설을 갖춘 병원을 드나들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내가 아버지께 한 번도 아들다운 도리에서 도움을 드려볼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쉽사리 체념할 수 없는 집 떠난 쓰린 내 사연이 있어서 더더욱 간절히 아버지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지금 모실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길을 갈 것이다. 부럽기 그지없는 가족들의 어울림이 내겐 쉬이 뒤틀림으로 와 닿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한다. 한 번쯤이라도 병원 문을 드나들었던들 이렇게 사무치지는 않을성싶다.
둘러앉은 여러 환자 가족에게 단 한 번이라도 ‘우리 아버지의 담당 의사는 아무개이고 이 병원에서 오길 잘했다’라고 말해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이럴 때 흐른 세월을 압축시켜서 내 떠날 때의 아버지 모습을 내가 보면서 입원시켜 드릴 능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초월하는 능력이 나를 아버지께 인도하여 사죄의 기회라도 줄 순 없을까?
뼈에 사무친다.
본연으로 돌아와 현실의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되는 이 모순된 삶을 아무도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휠체어를 밀고 나란히 움직이면서 옆 가족을 선망하는 이중의 고통을 나는 내 업으로 여길 따름이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