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무대는 턱없이 좁았다.
갓 해방된 나라, 강원도 변두리 바닷가의 시골 마을에도 인근의 항구도시에서 흘러온 개화의 물결은 기차를 타고 여지없이 파고들었다. 검정‘몸뻬;일바지’ 옷이 치마로 바뀌고 ‘지카다비’와 ‘게다’와‘게도루’가 고무신에 바지저고리로 변하더니 흩어져 나갔던 동네 청년들이 마을로 찾아들었다.
은둔하듯 살아오든 마을의 뭇 처녀들은 더불어 가슴을 폈다. 누나라고 거기서 빠질 수는 없었다. 더구나 내가 따를 수 없이 돋아난 누나는 시대를 잘못 만나, 가난이 더하여, 그렇게 누나의 소질을 드러내지 못하다가 물을 만난 고기처럼 활달해졌다. 행동은 어느새 ‘끼’를 엿볼 수 있을 만큼 자신에 차 있을 때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실 마을 처녀들 누구나 우물가가 아니면 새 소식을 얻을 수 없었던 한촌(閑村), 그저 시집가는 날까지 집안일을 도우면서 살아야 했었다. 외부의 소식을 듣는다는 것은, 출입한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는 것이 고작이었던 한 시절이 흘렀다.
일제(日帝)하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누나의 진학은 우리 집 형편으론 엄두도 못 냈다. 우선 외지에 나가려면 그만한 경제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도 문제려니와 여자의 몸으로 홀로 외지에 나간다는 것은 어림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거둘만한 친인척이 누군가 도시에 있어야 했는데 우리 집엔 그런 인연이 없었기에 누나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누나의 향학열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그래서 그 힘을 주어진 여건에서만이라도 충분히 발휘하는 터였으니 얼마나 목마른 지식의 탐닉이었던가! 난 짐작하고 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개방의 물결에 누나는 때를 만난 듯 기뻐했다. 사상이 어떻고 이념이 어떻고, 하는 그런 것은 아랑곳없이 오직 신지식이라면 무엇이든지 누나의 지적 갈증을 푸는 데 보탬이 되었다. 누나는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무엇이든 참여했다. 신여성이 되려는 누나의 열망은 끊일 줄 몰랐다.
이 무렵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머리를 길렀고 면면촌촌이 놀이와 연극과 광대가 유행처럼 번졌다. 마을의 청년들은 때를 만난 듯 예술적 기량을 서로 발휘하는 무대를 마련했는데 누나는 그런 곳에조차 나갈 수 없었다.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고루한 우리 집에서 승낙하지 않았기 때문에 몰래 노래를 배우곤 했다. 비록 신파극단에는 따라나설 수는 없었지만, 공식적인 마을의 모임이 있는 ‘공회당’에서는 곧잘 잠재된 재능을 드러냈다. 응당 붉은 깃발을 든 노동당의 전위인 예술동맹에서는 가입할 것을 권유받았고 이를 뿌리친 어른들의 고집으로 누나는 또 좌절했다.
지금, 이런 누나에게 난 무대를 마련해 드리고 싶다. 비록 세월이 흘러서 혼백의 처지로서밖에 설 수 없을지라도 굳이 거기에서 누나의 못다 한 한을 풀어드리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어쩔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피지도 못하고 떠난 누나에게 내가 영혼의 위로나마 드리고 싶다. 진정 타고난 소질을 계발하지 못한 누나의 삶은 아직 세상에 살아남은 내게 한을 맺게 했고 이제 난 그 한을 이렇게밖에 풀지 못한다.
누나가 지금의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이 시대를 풍미했을 것이라고 추기고 싶다.
예술적 소양을 펴지 못한 누나의 원혼(冤魂)을 달랜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