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59.040219 배움
불쌍한 ‘정희’동생은 여덟 살이 되어도 학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희’는 곱사가 되는 병을 앓으면서 꼬부라진 허리를 펼 수가 없었거니와 등에서 나오는 고름을 닦느라 한시라도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병자였기 때문이다.
이 아홉 살 아래의 예쁜 ‘정희’동생은 일찍 재주를 보이다가 어느 때부턴가 병마로 시들었다. 집안엔 그늘이 무겁게 드리웠고 나 또한 많은 것을 생각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유희’춤을 제법 추었고 이를 지켜보시는 식구들은 마냥 슬펐다. 뉜들 ‘정희’동생이 저렇게 불구가 될 몹쓸 병을 앓으리라고 짐작이나 했겠는가!
내가 공부한답시고 외지에 나갔다가 오랜만에 집에 와서 보았든 ‘정희’ 동생이 지금 너무나 생생하다. 핏기 잃은 얼굴로 나를 반기면서 특유의 유희를 내게 또 선보였다. 지켜보는 식구들은 눈물을 감추느라 얼굴을 돌리고, 나 또한 동생 앞에서 억지웃음을 지면서 숯덩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이름도 예쁜 내 동생, 곧을 정(貞) 계집 희(姬) ‘정희’는 이 세상에 무엇을 위해서 태어났는가! 가까이는 가족에게 멀리는 이웃들과 친척들에게, 말하려는 숨은 뜻은 무엇인가! 내 평생을 이렇게 아픈 상처를 딛고 무엇을 하라고 내 앞에서 그렇게 예쁜 유희 춤을 보였느냐!
그 때는 다만 아린 눈물만 씹었는데, 오늘을 살아가며 무엇을 다시 듣고 있는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 ‘정희’는 정상인과 장애인이 함께 사는 터전을 닦아야 한다는 말을 한 것일까! 아니다. 누구든 ‘정희’를 보며 숨을 가누고 세상을 살피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분명 우리 집안을 위해서 우리 이웃을 위해서 우리 세상을 위해서 작은 그 무엇을 이루고는 있을 것인데,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스치는 것은 아닌지!
이제 새삼스레 육십 년 전의 일을 되뇌는 내 삶의 좌표에서는 분명 ‘정희’와 상관이 있는 표지가 있을 성싶다. 그게 무엇인가! 나는 나의 삶을 살찌우는 정신적 영양소로 보아 동생의 짧은 삶을 마시고 살아 온 것이 아닌가!
언젠가 돌아가서 동생의 얼굴을 다시 보며 한 맺힌 배움의 터전을 닦아주고 싶은 끈질긴 집념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를 위해서 동생은 미리 이승의 기를 내게 불어넣으려 태어났을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진정으로 동생의 인생은 없는 것일까! 그 또한 고개가 저어진다. ‘정희’는 치료되어 정상적인 어린이로 커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어야 했지만 우리 집은 그런 여력이 없었다.
이 애절한 사연을 속으로 새기고 계신 우리 부모님의 심정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까 만 나는 울부짖는다. 앉은 자리에서 고스란히 견디어 낼 수밖에 없는 우리네 형편, 피맺히는 사연이다.
‘정희’의 끔찍한 몸이 나의 평생을 그늘지게 함은 그 그늘로써 그칠 수가 없음을 알게 하고, 이대로 아무런 의미 없이 다만 스치는 세월에 실려 사라지는 내가 아닐 것임을 알게 하니 더욱 괴롭다. 살기 좋은 세상에서 나만 즐겨 산다는 것이 동생의 몫이 내게 함께 있다고 여겨 작은 위로가 되지만 그게 아닌 것 같아서 치를 떤다.
그대로 지금 데려다가 걸 맞는 학교에 보내서 친구들과 사귀면서 춤추고 노래하고 재잘대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보통 어린이로 커가는 모습을 보았으면 내가 평생의 그늘을 벗어나 밝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정희’야 너는 지금 내 앞에 왜 올 수 없니.
‘정희’야 왜 내가 네 앞에 설 수 없니.
우리 함께 학교로 가자!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