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려)장’을 하던 시절의 살 사람과 죽을 사람이 어떤 심경으로 지냈을까 하고 골똘히 생각하면서, 이 시대에 그런 유습(遺習)이 있다면 어떤 반응이 있을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자못 궁금해진다.
모름지기 옛사람들은 죽음을 삶의 또 다른 방편으로 여겨서, 죽을 사람이나 살 사람이 함께 죽을 사람의 집을, 지배층이라면 돌로 화려한 집을 짓겠고, 피지배층이라면 산비탈 동굴 속이 비슷한 묘혈이 되겠다.
어느 시대엔 고인돌 밑에서, 함께 기쁘고 즐겁게 서로를 맞고 보내는 절차와 의식을 가지면서 즐겼을 것 같다.
많은 노복을 거느린 지배층은 남의 노력을 빼앗아서 평생에 걸쳐 쌓고 다듬어서 그 속을 화려하게 단장하고 수시로 왕래하면서 미래에 앉거나 누워 있을 자리에서 ‘예행연습’ 했을 테고, 기력이 쇠잔하면 아예 그리로 옮겨서 호령하다가 점점 꺼져갔을 성싶기도 하다. 이때 산 사람들의 태도를 상상하면 슬프거나 괴로운 것이 아니라 잠시 사는 방법을 달리하여 지내는 듯했을 것이다. 마치 별궁에 와서 잠시 머무는 듯했을 것이다.
피지배층은 눈비를 가릴만한 천연 동굴 속에, 아니면 토굴을 파서 자리를 마련하고 부모를 업어다 모시고 조석으로 문안드리며 동고동락했을 터인즉 굴속의 부모 마음은 지극히 평온하고 희열에 충만했으리라. 잠시 헤어지는 아들 며느리의 뒤를 바라보며, 그 실, 버리고 가는 아들이고 며느리건만 효성스럽고 대견하여 발을 뻗고 눈을 감았으리라. 기력과 의식이 있을 때 드실 만큼의 음식을 놓고 가는 것이 더 없는 효성이었을 것 같다. 굴속의 부모는 떠나가는 자식들을 향해 손을 들어 답하고, 기쁜 마음으로 발걸음 가볍게 돌아오는 자식들은 남긴 부모에게 ‘부모님 잠시 뜰에 일을 나갔다가’ 오겠다고 하는 생각 정도였을 것이다.
그들의 생각은, 사는 것은 죽음의 시작이고 죽음은 삶의 부분임을 깨닫고 생사를 같은 경지로 여겨 하나의 생활 형태로 자리 잡아서 면면히 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자기 부모를 모시듯이 그들도 자기 자식들에게 자기를 버리도록 용납했을 것이다. 버린다는 표현은 그들의 생활 가치를 모독하는 우리 현대인의 몰지각한 표현이겠지만, 아무튼 우리네 선조들이 했고 우리의 오늘을 있게 한 뿌리인 것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좀 더 우리의 허식과 체면치레와 가식을 벗을 전기를 마련하는 데 이바지하는 좋은 선험적 교훈으로 삼음 직하다. 현대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취급한다 해도 유한의 인간 육의 생명을 늘릴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발버둥을 치지 말자는 것이다.
오늘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린이는 분묘 없이 돌무덤으로 대신했다. 이는 인격을 도외시한 산 사람 편의주의 탓이다. 날 때부터 한 인격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가치를 기준으로 한다고 해서 사람으로서의 대접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산 사람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듯하여 고래(려) 장과 비교되어 오늘의 인심이 선명히 드러난다. 현대인의 가치를 살린다면 사람은 날 때부터 평등화해야지 어린이만이 ‘고래(려)장’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즉 우리는 ‘고래(려)장’ 시대에 살고 있지 않으면서 특정한 인간만을 ‘고래장화’ 하는 데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우리 할머니와 우리 부모님이 ‘고래(려)장’이 되었는지 ‘애장’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런대로 현대적인 장례로서 모셨는지 알지 못하는 내가 한없이 슬프고 괴롭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