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86.001109 고래 장
고래 ( 려 ) 장을 하던 시절의 살 사람과 죽을 사람이 어떤 심경으로 지냈을까하고 골똘히 생각하면서 , 이 시대에 그런 유습 ( 遺習 ) 이 있다면 어떤 반응이 있을까 하고 생각 할 때가 있다 . 자못 궁금해진다 .
모름지기 옛 사람들은 죽음을 삶의 또 다른 방편으로 여겨서 , 죽을 사람이나 살 사람이 함께 죽을 사람의 집을 , 지배층이라면 돌로 화려한 집을 짓겠고 , 피지배층이라면 산비탈 동굴 속이나 비슷한 묘혈이 되겠다 . 어느 시대엔 고인돌 밑에서 , 함께 기쁘고 즐겁게 서로를 맞고 보내는 절차와 의식을 가지면서 즐겼을 것 같다 .
많은 노복을 거느린 지배층은 남의 노력을 빼앗아서 평생에 걸쳐 쌓고 다듬어서 그 속을 화려하게 단장하고 수시로 왕래하면서 미래에 앉거나 누워 있을 자리에서 예행연습을 했을 테고 , 기력이 쇠잔하면 아예 그리로 옮겨서 호령하다가 점점 꺼져갔을 성싶기도 하다 . 이때에 산 사람들의 태도를 상상하면 슬프거나 괴로운 것이 아니라 잠시 사는 방법을 달리하여 지내는 듯 했을 것이다 . 마치 별궁에 와서 잠시 머무는 듯 했을 것이다 .
피지배층은 눈비를 가릴만한 천연 동굴 속에 , 아니면 토굴을 파서 자리를 마련하고 부모를 업어다 모시고 조석으로 문안드리며 동락했을 터인즉 굴속의 부모의 심정은 지극히 평온하고 희열에 충만했으리라 .
잠시 헤어지는 아들며느리의 뒤를 바라보며 , 그 실 , 버리고 가는 아들이고 며느리건만 효성스럽고 대견하여 발을 뻗고 눈을 감았으리라 . 기력과 의식이 있을 때 드실 만큼의 음식을 놓고 가는 것이 더 없는 효성이었을 것 같다 . 굴속의 부모는 떠나가는 자식들을 향해 손을 들어 답하고 , 기쁜 마음으로 발걸음 가볍게 돌아오는 자식들은 남긴 부모에게 ‘ 부모님 잠시 뜰에 일을 나갔다가 ’ 오겠다고 하는 생각 정도였을 것이다 .
그들의 생각은 , 사는 것은 죽음의 시작이고 죽음은 삶의 부분임을 깨닫고 생사를 동일한 경지로 여겨 하나의 생활 형태로 자리 잡아서 면면히 이었을 것이다 . 그들이 자기 부모를 모시듯이 그들도 자기 자식들로 하여금 자기를 버리도록 용납했을 것이다 . ‘ 버린다 ’ 는 표현은 그들의 생활 가치에 모독적으로 가하는 우리 현대인의 몰지각한 표현이겠지만 , 아무튼 우리네 선조 들이 했고 우리의 오늘을 있게 한 뿌리인 것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좀 더 우리의 허식과 체면치레와 가식을 벗을 전기를 마련하는데 기여하는 좋은 선험적 교훈으로 삼음직하다 . 현대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취급한다 해도 유한의 인간 육 적 생명을 늘릴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말하자면 발버둥치지 말자는 것이다 .
오늘에 ,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어린이는 분묘 없이 돌무덤으로 대신했다 . 이는 인격을 도외시한 산 사람 편의주의 탓이다 . 날 때부터 한 인격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 현대적 가치를 기준으로 한다 해서 사람으로서의 대접을 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산 사람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듯하여 고래 ( 려 ) 장과 비교되어 오늘의 인심이 선명히 부각된다 . 현대인의 가치를 살린다면 사람은 날 때부터 평등화해야지 어린이만이 고래 ( 려 ) 장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 즉 우리는 고래 ( 려 ) 장 시대에 살고 있지 않으면서 특정한 인간만을 고래장화 하는데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
우리 할머니와 우리부모님이 고래 ( 려 ) 장이 되었는지 애장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런대로 현대적인 장례로서 모셨는지 알지 못하는 내가 한없이 슬프고 괴롭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