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자기가 태어난 날을 범상치 않은 날로 여겨서 그날을 잊지 않고 기린다. 마찬가지로 우리 고유의 민속 명절도 그렇고 다른 민족의 명절도 이처럼 구성원 모두가 즐길 것이다.
한데, 가끔은 특별히 기억되는 날이 이런 명절과 겹치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범상한 날이 되어버리거나 고통의 날이 되어버릴 수 있다. 그날이 함께 즐거운 날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기뻐야 할 날에 슬픔이 닥쳤으니 괴이쩍다.
내겐 이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닌 것이 이상하다. 늘 산란한 내 머리로 별난 날들을 꼽아대는 짓을, 남들은 일러서 하릴없는 사람이니 세월이나 깎아내고 후벼 파는 짓거리라고 할 것이다. 그렇게. 그만일 것이련만 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다행한 일이라고 여기며 반겨 적지 않을 수 없다.
성탄절이나 추석 절이 그렇다. 온 세상이 구원의 소식에 들떠 기뻐하건만 내게는 이날이 슬픔과 고통으로 이어진 날이 되어 삶과 죽음의 의문을 뇌리에 굵게, 깊숙이 새겨나간다. 허구한 날 남달리 기쁘게만 지낼 수 없었든, 그런 내 사연을 되새김질하고 되뇌어서 그 의미를 붙여보고 싶다.
어째서 삼백육십오일 중에서 내가 겪어야 하는 고통의 날이 모든 이가 기뻐하는 그날이어야만 하는가? 삼십억 명이 그날에 살았으되 모두 기쁨에 가득 차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그런 이들을 통틀어서 내가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속속들이 모르는 그들의 일상으로 따져서 나와 같은 고통 속에 지새는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인데도 그들의 일을 꺼낼 수 없으니 그렇다.
더구나 온통 세상일이 나에게 짊어지운, 나만의 일 같이 느끼는 지력(知力)의 한계와 무력이 그렇게 만든다. 하여 여기에 그들의 몫까지 묶어서 내가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제치고, 내게 와 닿은 내 일만을 두고 말하고 싶다. 내 것만 도마 위에 올려놓고 보자!
내 가슴속 응어리를 죄다 풀어 쌓으면 우주를 밀어낼 만큼 팽만할 것이지만 다할 수 없고 한숨을 서려서 바람에 실으면 태풍이 되어 온 땅을 덮칠지라도 다하지 못할 내 한이 남들의 기쁜 날에 묻혀있다.
성탄절에 어린 딸을 보냈고, 아들을 사경에 헤매게 했는가 하면 그 아들이 성장하여 같은 성탄절에 오장의 하나를 잘라 없애야 했다. 또 다른, 추석날에 내 억류(抑留)의 실마리가 되도록 붙들렸고 한 생을 다할 세월이 흐른 뒤에 같은 추석날 아내를 잃었다. 성탄과 한가위, 동(東)과 서(西), 생(生)과 사(死),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내 인종(忍從)의 저울 한끝에 아버지의 굳게 다문 입이 못내 열리지 못했고 그리하여 갇힌 응어리의 무게, 발 덮개가 되어버린 양말과 손 가시랭이가 밴 짚신의 무게, 그리고 불구멍 난 삼베 행주치마에 밴 어머니의 눈물이 한끝에 놓여있고 다른 한쪽에 죽은 내 딸의 작은 영혼이 매달려 있고 그와 함께 내 아들의 천근 같은 보행 보조기구가 달려있을지라도 평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자꾸만 아버지와 어머니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어서 내가 괴로운 것인가?
이상하다. 분명 난 딸과 아들과 아내의 변고에 시달리지만, 저울은 저쪽으로 기우는 것이어서 내가 모르는 아픔이 있는 것일까? 천칭(天秤)의 한가운데는 내 생의 갈림길이 놓여있고 그 너머에 고향의 부모와 형제가 정정히 살아계시고 이쪽에는 하얗게 바랜 과거만 있기에 저울 저쪽은 한없이 무겁기만 한 것인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아직도 더 많은 이의 즐거운 날에 내 절규로 점철된 일들이 있어야 인종(忍從)의 저울이 평형을 이루고 단절된 시공이 일순에 합치되어 내 모든 시름이 사라질 것 같다.
곧, 내 앞에 닥친 일은 현세적 사건과 일치되고 과거에 있었지만, 미래에 있을 모든 일의 총화로서 가늠되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나의 짐이니 기꺼이 모두 받아들일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자리에 놓고 종합하여 서열화하고 거기에 맞추어서 살아야 할 것인즉, 그것은 나를 초월하는 나이여야 할 텐데 이 초월의 의미는 또 무엇인가?
곧, 죽음이 아닐까, 싶다. 죽지 않고는 초월할 수 없다. 이 초월적 경지가 곧 해결점이 아닌가 싶다.
나를 초월하여 나를 찾자! 그러면 열락(悅樂)은 끊이지 않을 것이고 인고의 고리는 끊어질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이 인고의 고리에 얽혀 있을 것이다. 나만이 아니다. 나처럼 모든 이가 즐거운 날에 슬픔이 겹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들은 인종(忍從)의 저울 양쪽이 어떤 이유로든 무겁거나 가벼운 것이 아니라 나의 헤아림의 척도로는 미치지 못하는 평형의 연유(緣由)가 있을 것인즉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순간마다 자유로이 할 수 있는 능력자라야 할 것이다. 그러함을 우리는 기대할 수 없기에 감내할 수밖에 없다.
난 특별한 날에 당하는 고통을 미래의 즐거움을 당겨 버무려서 그저 그런, 보통의 날로라도 만들고 싶다. 평생을 두고 이루어지지 않은 이날은 언제 올 것인가?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