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필 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때 나도 소리를 내어 환성(歡聲) 할 것이다.
긴 날, 낮이면 햇빛을 보듬고 밤이면 달빛에 속삭이다 바람에 이슬을 굴려서 별에 물어보고, 새들의 노래를 엮어 보듬어서 자란 잎을 딛고 망울지기까지 몇 번이나 망설였을까. 너무 매초롬하여 시샘도 받았겠지. 미처 크기 전에 꺾일까, 봐 한숨도 지었겠지, 꽃다운 꽃을 피우려 목청인들 얼마나 가다듬었을까.
꽃은 그래도 봉오리 터질 때 탄성과 환희의 노래를 불렀을 성싶어 자지러지듯 내 마음이 즐겁다. 내 자취에 꽃봉오리 시절이 있었던가. 잎이라도 흠집 없이 제대로 달은 적이라도 있었던가.
돌이켜본다. 난 꽃이 되기 전에, 봉우리 지기도 전에 그냥 꽃을 피우려다가 그대로 못 이루고 끄트머리 잎을 꽃으로 여겨서 남에게 내보일 수밖에 없는, 나를 알고 스스로 위로하며 살아왔다. 내 철들기 전에는 세상만사가 무지개였다.
나뭇잎이 바람결 타고 내게 손짓했고 강변의 조약돌조차 나를 향해 조아렸기에 내 가슴 울렁이던 시절, 보이는 모두는 신나는 것이었다. 있는 그 자체로 즐거웠다. 기쁨에 가득 차서 소리 지르며 뛰어 달렸다. 환희의 나날이었다.
철나면서, 무지갯빛 세상은 차츰 잿빛 구름으로 덮여 갔다. 점점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의 지평에 외로웠다. 사위(四圍)가 허허로운 한가운데 서서 갈 바를 정하지 못해 애간장을 태웠고 꽃봉오리 맺기를 바라는 마음조차 먹을 수 없어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만족이 환희의 싹이라서, 작은 희망을 가꾸어 환희의 순간을 맺도록 계산된 삶을 살지 못한 내가 이제 환희에 들떴던 들꽃의 지난 한때를 바라보며 들꽃보다 더 움츠러드는 안개 낀 심성을 헤쳐 허우적대고 있다.
잡히지 않는 안개, 부딪치려 해도 닿지 않는 과거, 지우고 다시 쓰고 싶은 과거, 내 것을 작고 알차게 하여 흐드러진 민들레건, 천지를 불태우는 장미꽃이 되건, 환희의 삶을 살고 싶은데 돌이킬 수 없구나!
비웃지 마라! 조롱하지 마라! 이만큼 나를 안 것이 너를 안 것이니 이만하면 늦은 탄성이라도 질러 볼까, 하여 차라리 즐겁다.
울밖에 난 풀이 환희의 꽃망울을 터뜨린다. 내 귀에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난 아직 울안에 있나 보다.
이제 꽃은 내게 그 피는 날을 일러주지 않는다.
그 피는 시간도 알려주지 않는다.
내 아쉬움, 흘러간 듯 내 그리움도 그렇게 스쳐 가려나!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