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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테아(Dorothea)
9154.090731 두드리라
그분께서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셨답니다. 어떤 기록보다도 가깝고 생생하게 하느님을 표현한 것이랍니다. 하느님에 대해선 완벽하게 알 수 없답니다. 하지만 아버지라 했을 때는 느낌을 구체화할 수 있답니다. 아버지라는 가르침은 어떤 신학 이론보다도 설득력 있고 친근감이 있답니다. . . .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생선을 청하는 아들에게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겠느냐?’ . 이렇듯, 말씀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답니다. 그런데도 아직 ‘벌주는 하느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어린이의 신앙’에 머물고 있는 것이 된답니다. . . . 죄의식 때문에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로 부르지 못할 수 있답니다. 그분 앞에서 뻔뻔스러울 수는 없답니다. 하지만 지나친 위축도 바른 자세가 아니랍니다. 부모 앞에서 벌벌 떠는 자녀를 좋아할 아버지가 어디 있겠느냐고 합니다. 우리는 죄를 짓는 인간이랍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하느님의 자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답니다. 그러기에 끊임없이 기도한답니다. 두드리면 아버지는 반드시 열어주신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두드리다 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답니다. 나는? 외통.
그분께서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셨답니다.
어떤
기록보다도
가깝고 생생하게
하느님을 표현한 것이랍니다.
하느님에 대해선 완벽하게 알 수 없답니다.
하지만
아버지라 했을 때는
느낌을 구체화할 수 있답니다.
아버지라는 가르침은
어떤 신학 이론보다도
설득력 있고 친근감이 있답니다.
.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생선을 청하는 아들에게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겠느냐?’
이렇듯,
말씀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답니다.
그런데도 아직
‘벌주는 하느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어린이의 신앙’에 머물고 있는 것이 된답니다.
죄의식 때문에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로 부르지 못할 수 있답니다.
그분 앞에서
뻔뻔스러울 수는 없답니다.
지나친 위축도
바른 자세가 아니랍니다.
부모 앞에서
벌벌 떠는 자녀를
좋아할 아버지가 어디 있겠느냐고 합니다.
우리는
죄를 짓는 인간이랍니다.
그에 앞서
하느님의 자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답니다.
그러기에
끊임없이 기도한답니다.
두드리면
아버지는 반드시 열어주신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두드리다
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답니다.
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