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모래

시 두레 2010. 2. 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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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모래



+ 밥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더라
(고은·시인)




+ 긍정적인 밥

詩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함민복·시인)


+ 밥, 그 밥 한 그릇의 사랑이여 용서여

여보야
밥 안 먹었지
이리 와서 밥 같이 먹자
김이 난다 식기 전에 얼른 와서
밥 같이 나눠먹자
마주 보면서 밥 같이 나눠 먹으면
눈빛만 보고도
지난 오십 년 동안 침전된 미운 앙금은
봄눈 녹듯이 녹아 내릴 것 같애
우리 서로 용서가 될 것 같애
여보야
밥 안 먹었지
이리 와서 밥 같이 먹자
밥, 그 한 그릇의 사랑이여 용서여
(이선관·시인)



+ 晩餐(만찬)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함민복·시인)




+ 밥알

갓 지어낼 적엔
서로가 서로에게
끈적이던 사랑이더니
평등이더니
찬밥 되어 물에 말리니
서로 흩어져 끈기도 잃고
제 몸만 불리는구나
(이재무·시인)



+ 밥 먹는 법

밥상 앞에
무릎을 꿇지 말 것
눈물로 만든 밥보다
모래로 만든 밥을 먼저 먹을 것
무엇보다도
전시된 밥은 먹지 말 것
먹더라도 혼자 먹을 것
아니면 차라리 굶을 것
굶어서 가벼워질 것
때때로
바람 부는 날이면
풀잎을 햇살에 비벼 먹을 것
그래도 배가 고프면
입을 없앨 것
(최승호·시인)



+ 식사법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들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것 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픈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을
잘 넘길 것
(김경미·시인)




+ 국밥집에서

허름한 국밥집에서
국밥 한 그릇 먹다보면
그래도 사는 게 뜨끈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장난 시계와 삐걱거리는 의자와
비스듬히 걸린 액자가 다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뜨거운 국밥 한 숟갈 목젖을 데워오면
시린 사랑의 기억마저 따뜻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로움도 쓸쓸함도 다 엄살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자리 모여 앉아 제각각의 모습으로 국밥을 먹는 사람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낯이 익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주 한 잔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국밥집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구겨진 날들이 따뜻하게 펴지고 있다
(박승우·시인)




+ 거룩한 식사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을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 세상 떠 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에서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파고다공원 뒤편 순대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황지우·시인)



+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판이 그립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어머니의 두레판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내 꽃밭에 앉는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두레판.
둥글게 둥글게 제비새끼처럼 앉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밥숟가락 높이 들고
골고루 나눠주시는 고기반찬 착하게 받아먹고 싶다.
세상의 밥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
한 끼 밥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버렸다.
밥상에서 밀리면 벼랑으로 밀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하이에나처럼 떠돌았다.
짐승처럼 섞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의 밥상을 엎어버렸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 어머니의 둥근 두레판에 앉고 싶다.
어머니에게 두레는 모두를 귀히 여기는 사랑
귀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 가르치는
어머니의 두레판에 지지배배 즐거운 제비새끼로 앉아
어머니의 사랑 두레먹고 싶다.
(정일근·시인)






+ 아버지의 밥그릇

언 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으면
봉분 같은 아버지 밥그릇이 쓰러졌다
늦은 밤 발씻는 아버지 곁에서
부쩍 말라가는 정강이를 보며
나는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고서야 이불은 걷히고
사각종이 약을 펴듯 담요의 귀를 폈다
계란부침 한 종지 환한 밥상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밥을 남겼고
우리들이 나눠먹은 그 쌀밥은 달았다
이제 아랫목이 없는 보일러방
홑이불 밑으로 발 밀어 넣으면
아버지, 그때 쓰러진 밥그릇으로
말없이 누워 계신다
(안효희·시인)




+ 외할머니의 숟가락

외갓집은 찾아오는 이는 누구나
숟가락부터 우선 쥐여주고 본다
집에 사람이 있을 때도 그렇지만
사람이 없을 때도, 집을 찾아온 이는 누구나
밥부터 먼저 먹이고 봐야 한다는 게
고집 센 외할머니의 신조다
외할머니는 그래서 대문을 잠글 때 아직도 숟가락을 쓰는가
자물쇠 대신 숟가락을 꽂고 마실을 가는가
들은 바는 없지만, 그 지엄하신 신조대로라면
변변찮은 살림살이에도 집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한 그릇의 따순 공기밥이어야 한다
그것도 꾹꾹 눌러 퍼담은 고봉밥이어야 한다
빈털터리가 되어 십년 만에 찾은 외갓집
상보처럼 덮여 있는 양철대문 앞에 서니
시장기부터 먼저 몰려온다 나도
먼길 오시느라 얼마나 출출하겠는가
마실 간 주인 대신 집이
쥐여주는 숟가락을 들고 문을 딴다
(손택수·시인)




+ 쟁반탑

탑이 춤추듯 걸어가네
5층탑이네
좁은 시장 골목을
배달 나가는 김씨 아줌마 머리에 얹혀
쟁반이 탑을 이루었네
아슬아슬 무너질 듯
양은 쟁반 옥개석 아래
사리합 같은 스텐 그릇엔 하얀 밥알이 사리로 담겨서
저 아니 석가탑이겠는가
다보탑이겠는가
한 층씩 헐어서 밥을 먹으면
밥 먹은 시장 사람들 부처만 같아서
싸는 똥도 향그런
탑만 같겠네
(복효근·시인)




+ 찬밥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
찬밥 속에 서릿발이 목을 쑤신다
부엌에는 각종 전기 제품이 있어
1분만 단추를 눌러도 따끈한 밥이 되는 세상
찬밥을 먹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 혼자 찬밥을 먹는다
가족에겐 따스한 밥 지어 먹이고
찬밥을 먹던 사람
이 빠진 그릇에 찬밥 훑어
누가 남긴 무우 조각에 생선 가시를 핥고
몸에서는 제일 따스한 사랑을 뿜던 그녀
깊은 밤에도
혼자 달그락거리던 그 손이 그리워
나 오늘 아픈 몸 일으켜 찬밥을 먹는다
집집마다 신을 보낼 수 없어
신 대신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홀로 먹는 찬밥 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나 오늘
세상의 찬밥이 되어
(문정희·시인)




+ 큰 가시 하나 남기고

청어 구이를 먹는다
검푸른 등껍질 밑에서 은백색 뱃살까지
발라먹다가
그 많은 가시들을 다 골라낼 수 없어
잔가시들은 더러 삼키기도 했는데
가시 한 개가 목구멍에 걸렸다
어머니 말씀대로 밥 한 숟가락 담뿍
목이 메어져라 넘겨본다
밥 한 술에 떠밀리어 가시가 넘어간다

나는 밥 한술의 힘을 신봉한다
송곳으로 찌르는 말,
피할 수 없게 달겨드는 운명의 서슬이며
원인을 알 수 없이 욱신거려오는 편두통도
모두 밥 한 숟가락으로 꿀떡꿀떡 잘도 삼켜 왔다

이제, 큰 일 한 가지 남았는데
그새 내가 억센 가시로 자라버려
나를 통째로 삼켜버려야 하는 일
(주경림·시인)




+ 쌀노래

나는 듣고 있네.
내 안에 들어와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는
한 톨의 쌀의 노래
그가 춤추는 소리를

쌀의 고운 웃음
가득히 흔들리는
우리의 겸허한 들판은
꿈에서도 잊을 수 없네

하얀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는 엄마의 마음으로
날마다 새롭게
희망을 안쳐야지

적은 양의 쌀이 불어
많은 양의 밥이 되듯
적은 분량의 사랑으로도
나눌수록 넘쳐나는 사랑의 기쁨

갈수록 살기 힘들어도
절망하지 말아야지
밥을 뜸들이는
기다림으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희망으로
내일의 식탁을 준비해야지
(이해인·수녀)



+ 밥 먹는 자식에게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삼켜라
봄에서 여름 지나 가을까지 그 여러 날을
비바람 땡볕으로 이어온 쌀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먹어버리면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운 줄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 거여

주님을 모시듯 밥을 먹어라
햇빛과 물과 바람, 농부까지 그 많은 생명
신령하게 깃들어 있는 밥인데
그렇게 남기고 버려버리면
생명이신 주님을 버리는 것이니라
사람이 소중히 밥을 대하면 그게 예수 잘 믿는 거여

밥되신 예수처럼 밥되어 살거라
쌀 보리 밀 옥수수 물고기에 온 만물들은
자신을 제단 위에 밥으로 드리는데
그렇게 사람들만 밥되지 않으면
어느 누가 생명 세상을 열겠느냐
사람은 생명의 밥을 먹고 밥이 되어 사는 거여
(이현주·목사)


+ 쌀 한 톨

이는 내 살이니 먹을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고,
떡 한 덩이 떼어 주시며
처음이 없는데서 오셨다가
나중이 없는 데로 가신 우리 스승님
말씀하셨더니라.

쌀 한 톨에 불이 타오르고
흙이 숨쉬고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니
어찌 쌀 한 톨이 쌀 한 톨로만 존재한다 하겠는가?
떡을 먹을 때마다
먹는 자도 먹히는 떡도 사라지고
오직 먹고 먹히는
사랑의 거룩한 행위만 남느니
영원한 것은
홀로 빛나는 사랑의 무도(舞蹈)일 뿐!
(이현주·목사)


+ 쌀 한 톨

쌀 한 톨 앞에 무릎을 꿇다
고마움을 통해 인생이 부유해진다는
아버님의 말씀을 잊지 않으려고
쌀 한 톨 안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가
해질녘
어깨에 삽을 걸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
(정호승·시인)


+ 공양 기도문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 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땀과 정성과 무한한
노고의 공덕이 담겨 있습니다.

은혜로운 이 음식으로
이 몸 길러

몸과 마음 바로 하여
바르게 살겠습니다.

공양을 베푸신 임들께 감사드리며
주는 기쁨 누리는 삶이기를 서원하며
감사히 이 공양을 들겠습니다.

-정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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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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