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단구함(弊簞救鹹)
박태순(朴泰淳·1653~1704)의 시 '지감(志感)'에 나오는 네 구절이다. "평온하다 어느 날 가파르게 변하니, 수말 네 마리가 재갈 풀고 횡으로 달리는 듯. 재목 하나로 큰 집 기움 어이해 지탱할까? 구멍 난 광주리론 염전 소금 못 구하리(康莊何日變巉巉, 四牡橫奔又失銜. 一木豈支大廈圮, 弊簞未救塩池鹹)."
이제껏 탄탄대로를 밟아 평탄하게 지내왔다. 어느 순간 세상이 바뀌자 인심이 가파르고 각박하다. 힘 넘치는 수말 네 마리를 나란히 매어놓고 채찍질해 큰길을 내달리는데, 재갈마저 물리지 않아 제동 장치가 없는 형국이다. 미친 듯이 내닫다가 끝에 가서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
큰 건물이 기우뚱 기울었으니, 재목 하나로 받쳐 지탱코자 한들 될 일이겠는가? 염전에서 소금을 구워 담으려 해도 구멍 난 해진 광주리로는 방법이 없다. 시인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격랑의 회오리 앞에 뭔가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인데, 이렇게만 말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홍낙안(洪樂安)이 채제공(蔡濟恭)에게 1791년 9월에 발생한 천주교 진산(珍山) 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편지를 썼다. 천주교 신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부모의 신주를 불태운 일로 시작된 이 사건은 당시 조선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다음은 홍낙안의 긴 글 중 일부다. "옛날에는 나라의 금법을 두려워해서 어두운 방에서 모이던 자들이 지금은 백주 대낮에 마음대로 다니고, 공공연히 멋대로 전파합니다. 예전 파리 대가리만 한 작은 글씨로 써서 열 번씩 싸서 숨겨두던 것을 이제는 함부로 책자로 찍어내서 여러 지방에 배포합니다. 한번 이 천주학의 가르침을 듣기만 하면 목숨을 버리고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지상의 생사를 버리고 기쁜 마음으로 만겁의 천당에 들어가듯 하니, 한번 빠져든 뒤로는 의혹을 풀 길이 없습니다. 지금 경기도와 충청도 사이에는 더더욱 널리 퍼져서 마을마다 빠져들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제는 손을 대고자 한들 해진 광주리로 소금을 퍼담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벽위편(闢衛編)'에 있다.
여기서 폐단구함(弊簞救鹹)의 용례가 한 번 더 나온다. 소금을 담으려면 광주리가 튼튼해야 한다. 닳아 구멍 난 광주리로는 고생만 많고 보람이 없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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