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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초앙(以積招殃)  

얼마 전 심재(心齋) 조국원(趙國元·1905~1988) 선생이 소장했던 다산 선생의 친필첩을 아드님이신 조남학 선생 댁에 가서 배관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 짧은 글 한 편을 소개한다.

"다산에는 꿀벌 한 통이 있다. 내가 벌이란 놈을 관찰해보니, 장수도 있고 병졸도 있다. 방을 만들어 양식을 비축해두는데, 염려하고 근심함이 깊고도 멀었다. 모두 함께 부지런히 일을 하니, 여타 다른 꿈틀대는 벌레에 견줄 바가 아니었다. 내가 나비란 놈을 보니, 나풀나풀 팔랑팔랑 날아다니며 둥지나 비축해둔 양식도 없는 것이 마치 아무 생각 없는 들 까마귀와 같았다. 내가 시를 지어 이를 풍자하려다가 또 생각해보았다. 벌은 비축해둔 것이 있어서 마침내 큰 재앙을 불러들여(蜂以積著之, 故終招大殃), 창고와 곳간이 남김없이 약탈자에게로 돌아가고 무리는 살육자들에게 반쯤 죽는다. 그러니 어찌 저 나비가 얻는 대로 먹으면서 일정한 거처도 없이 하늘 밑을 소요하고 드넓은 들판을 떠돌며 노닐다가 재앙 없이 마치는 것만 같겠는가?"

당시 다산은 생각이 참 많았던 모양이다. 근면하고 계획성 있는 꿀벌과 놀기 바쁜 나비를 대비했으니 당연히 꿀벌 칭찬을 할 줄 알았는데, 자신은 나비가 더 부럽더라고 뒤집어 말했다. 부지런히 애써서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꿀벌보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천지를 소요하며 거침없이 살다가 재앙 없이 마치는 나비의 삶이 한결 가볍고 부러웠던 것이다.

나비 이야기로 넘어가기 직전에 두보가 기러기를 노래한 '영안(詠雁)' 시 한 수를 인용했는데, 시는 이렇다. "눈 오려 할 때 오랑캐 땅 떠나와, 꽃 피기 전에 초나라와 작별하네. 들 까마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깍깍대며 날마다 시끄럽구나(欲雪違胡地, 先花別楚雲. 野亞鳥無意緖, 鳴噪日紛紛)". 기러기는 생각이 깊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남쪽으로 내려와 꽃 피기 전에 북쪽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뒤쪽 나비 얘기를 듣고 보니, 사려 깊은 기러기가 까마귀만 못한 셈이 되고 말았다. 작위하고 애쓴 일들은 결국 남 좋은 일만 시켜주고, 저 하고 싶은 대로 했더니 재앙과 허물이 없는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배가 조금 고프면 어떤가? 내가 기쁜 삶을 살 때 내 삶의 주인이 된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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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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