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유삼등(文有三等)
표현이 멋지거나 화려한 글이 좋은 글은 아니다. 내용이 알차다고 해서 글에 힘이 붙지도 않는다.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눈길이 깃들어야 한다. 송나라 때 장자(張鎡·1153~1235)가 엮은 '사학규범(仕學規範)' 중 작문에 관한 글 두 단락을 읽어본다.
"문장을 지을 때는 문자 너머로 따로 한 물건의 주관함이 있어야만 높고 훌륭한 글이 된다. 한유(韓愈)의 문장은 경술(經術)로 글을 끌고 나갔고, 두보의 시는 충의(忠義)에 바탕을 두었다. 이백 시의 묘처는 천하를 우습게 보는 기상에 있다. 이는 보통 사람들이 미치지 못하는 지점이다(凡爲文章, 須是文字外別有一物主之, 方爲高勝. 韓愈之文, 濟以經術. 杜甫之詩, 本於忠義. 太白妙處, 有輕天下之氣. 此衆人所不及也)."
글을 읽고 그 사람이 보여야 좋은 글이다. 이백 시의 아우라는 술이 얼큰해서 바라보는 호방한 시선에서 빚어진다. 어떤 권력이나 권위도 그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두보의 시를 읽을 때 글자마다 맺힌 그의 성실한 진심과 위국애민의 마음을 어찌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글 너머로 작동하고 있는 한 가지 물건이 있어야, 어떤 글을 써도 그 사람의 빛깔이 나온다. 수사가 뛰어나고 주장이 제아무리 훌륭해도 이 한 가지 물건 없이는 그저 그런 글이 되고 만다. 어찌해야 이 물건을 얻을 수 있나? 우리가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글에는 세 가지 등급이 있다. 상등은 예봉을 감춰 드러내지 않았는데도, 읽고 나면 절로 맛이 있는 글이다. 중등은 마음껏 내달려 모래가 날리고 돌멩이가 튀는 글이다. 하등은 담긴 뜻이 용렬해서 온통 말을 쥐어짜내기만 일삼는 글이다(文字有三等. 上焉藏鋒不露, 讀之自有滋味. 中焉步驟馳騁, 飛沙走石. 下焉用意庸庸, 專事造語)."
덤덤하게 말했는데 뒷맛이 남는다. 고수의 솜씨다. 온갖 재주와 기량을 뽐내며 내디디니 모래가 날리고 돌멩이가 튄다. 잠깐 사람 눈을 놀라게 할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별 내용도 없이 미사여구를 동원해 겉꾸미기에 바쁜 글은 억지 글이다. 자기만 감동하고 독자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생각의 힘을 길러야 글에 힘이 붙는다. 절제를 알 때 여운이 깃든다. 여기에 나만의 빛깔을 입혀야 글이 산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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