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튼 발목으로 아스팔트 서성이다
나목마저 불꽃 감은 용궁 같은 광화문
만 갈래 빛의 미로에서
문득 길을 잃었다
흙먼지 낙진처럼 흩날리는 골목 어귀
놓쳐버린 길목에서 시들부들 녹슬다
줄줄이 삭아 내리는
철문 같은 나를 본다
젖은 구두 말려줄 바람이 눈뜨는 거리
세종로 후미진 길 마른 숨을 고르며
반갑게 꽃잎 물고 올
봄빛 삼가 기다린다/김윤
조선시대 정궁(正宮)의 정문(正門)인 광화문. 경복궁 남쪽의 문으로 일찍부터 위용을 떨치며 나라를 지켜왔다. 이 땅의 비바람을 받아내는 동안 소실과 식민의 치욕에 떨기도 했다. 그렇게 현판이 바뀌거나 말거나 조선 궁궐의 위엄으로 우리네 '만 갈래' 빛과 그림자를 여일하게 살펴왔다.
그런 문 앞에서 요즘 많은 일이 일어난다. 새로운 광장이 열려 열화의 함성을 피우나 하면 축제의 한마당 꽃을 피우기도 한다. 모두 길을 열고 만드는 큰 문의 역할에서 나오는 큰 힘이겠다. 그 문 앞에 서서 다시 새날의 길을 묻는다. '줄줄이 삭아 내리는/ 철문' 같은 지난 시간을 묻으며 '꽃잎 물고 올/ 봄빛 삼가 기다린다'. 오라, 새 바람 새 날빛의 갈채여!//정수자 시조시인/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