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月吐東林(신월토동림) 새 달은 동쪽 숲에 뱉어 나오고
磬聲山殿陰(경성산전음) 풍경 소리 절간 그늘에 울려 나올 때
高風初落葉(고풍초낙엽) 바람이 높이 불어 잎이 막 떨어져도
多雨未歸心(다우미귀심) 비가 많이 내려 귀가할 생각 못 하겠네.
海岳幽期遠(해악유기원) 선산(仙山)에 살자던 약속은 까마득하여
江湖酒病深(강호주병심) 강호에서는 술병만 깊어가겠네.
咸關歸鴈少(함관귀안소) 함관령(咸關嶺) 넘어 기러기 오지 않으니
何處得回音(하처득회음) 돌아온다는 오빠 소식 어디서 들을거나.
여성 문인을 대표하는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이 지었다. 십 대 후반의 동생 허균이 공부에 전념한다고 산사로 들어갔다. 동생이 안쓰러워 안부를 겸해 시를 지어 보냈다. 달이 숲 위로 솟아오르고 풍경 소리 나직한 밤이 되면, 돌아오고 싶은 마음 불쑥 일어나겠지. 하지만 비가 많이 내린 뒤라 엄두가 나지 않으리라. 갑산으로 유배 간 둘째 오빠로부터는 편지가 전혀 없구나. 돌아오겠다는 반가운 소식 전할 기러기는 그 높다는 함관령에 막혀 못 오나 보다. 오빠는 술로만 세월을 보내고 있겠구나. 선경(仙境)에 옹기종기 모여 살자던 약속은 언제 이루어질까? 소식 전하니 학업에 힘을 기울이기 바란다.//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