覺淵寺 오디
주지 스님,
죄 하나 슬쩍 짓고
들왔습니다
비로전 앞뜰의
저 뽕나무 말인가요?
바람에 흔들리거나
사람에 흔들리거나.
오디는 익었으니
제 갈 데를 간 것이고
보살의 배 안에서
열반을 하겠으니
그 누가
주인인가요
그냥 보고
있었지요. /서석조
오디 철이 좀 지났나. 뽕나무에 까맣게 익던 오디는 어린 시절 최고의 간식. 하굣길에 동네 오빠가 따준 오디는 더없는 맛이었다. 손이며 혀까지 까맣게 물들이던 뒤끝은 늘 곤혹스러웠지만 말이다. '뽕나무' 열매라 묘한 느낌도 주던 그 오디가 절 마당에 있으면 '열반'에도 드나 보다.
'주지 스님'과 '보살'의 대화가 오디처럼 농익은 날. 해학과 선문답을 오가는 듯싶은 말의 여운이 그윽하니 향기롭게 번진다. '바람에 흔들리거나 사람에 흔들리거나' 그것은 어쩌면 다 무심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자연의 일. 그 사이에서 뽕나무는 뽕나무대로 한참 더 '흔들리거나' 웃거나 했을까.
오디는 술이며 효소 등 '열반'도 점점 다양해진다. 하긴 상위 포식자인 사람의 열반이 힘들지 먹힌 것들은 '열반'으로 제 삶을 거두는 셈이 아닌가. 새삼 모아지는 먹이들 앞의 두 손….//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