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탄피 줍다 한쪽 팔을 잃은 후
평생을 복중에도 긴 소매 벗지 못한
고향의 팔복이 아제
부음을 전해 듣다
온 마을 폭음 낭자한 그해 봄 무렵부터
찔레꽃 너럭바위 뒷동산이 자주 울고
하굣길 깜장 고무신
뒤로 자꾸 처졌다
모퉁이 타달타달 책보 나른 오른팔 아짐
긴 소매 싹둑 잘라 지아비 수의 짓는다
어호아! 고개 넘을 때
소원 풀고 가라고… /장기숙
전쟁의 상처는 깊고 길다. 그 피해 없는 데가 있을까만 접경 지역은 더하다. 휴전선이 가까우니 휴전 중임을 일깨우는 사고도 잦다. '지뢰'라는 붉은 경고가 아무리 섬뜩해도 불의의 사고가 잦았던 것이다. '탄피 줍다 한쪽 팔을 잃'거나 목숨 잃는 일도 비일비재했으니 대인지뢰는 전쟁의 가장 긴 후유증이다.
'타달타달' 한쪽 팔의 '아재'도 지뢰 피해자. 수의나마 시원히 입혀 보내려고 '아짐'은 긴 소매를 '싹둑' 자른다. 그 '반소매 수의'에 한반도 역사가 겹친다. 지뢰를 딛고 사는 '접경'에 반쪽 나라 허리께를 잠식하는 지뢰들이 잠복하고 있듯. 붉은 금지가 널린 땅, 언제면 철책 없는 숲으로 바뀌어 평화롭게 뛰놀 수 있을지….//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