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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이야기
겨울 날씨 맵다 해도
풀씨는 살아 있다
언 가슴 추스르며
풀무질을 하는 저녁
어머니 빈손 터시며
군불을 지피신다
후미진 저 밭자락
휘어진 논두렁마다
솔 껍질 두둑 발로
고랑마다 누벼놓고
신새벽 하얀 아침도
입김으로 녹이셨다
그런 날은 씨앗들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살얼음 낀 땅 밑으로
손을 불며 길을 내는
뜨거운 물줄기 흘러
목젖까지 차올랐다
겨울은 오지게 추워야
해충 알이 죽는단다
매서운 동장군에
덕담을 붙이시며
복수꽃 노란 눈망울
먼눈으로 보시는 듯 /전정희
'오지게' 추우면 군불을 때며 느른히 죽치곤 했다. 긴 휴식에 든 들판처럼 시골 겨울은 그렇게 쉬어도 괜찮았다. 그런데 도시의 삶은 휴식도 힘들고, 변방으로 밀리면 더 가혹한 혹한에 처한다. 어서 따뜻한 시절 오기만 고대하는 쪽방에는 겨울 볕이 짧기만 하다.
그래도 '살아 있다'고 뒤척이는 '풀씨'들을 만나러 봄은 또 온다. 조만간 '목젖까지' 차오른 옹알이들이 만천하에 터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곧 입춘(立春), 어디선가 '씨앗들의 숨소리'가 옴직옴직 들리는 것만 같다. 눈을 뒤집어쓰고도 웃는 '복수꽃 노란 눈망울'도 방글방글 터져 나오리라.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