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럭바위
배추꼬랑이 널브러진 서릿발 허연 아침
밭머리 밤새 지킨 낡은 의자를 만났다
한 세월 무게를 견딘
중심조차 휘청이는.
누군가 저기 앉아
씨 뿌리고 두엄 치고
새끼줄 감싸주며
속이 차길 빌었겠지
울 엄마 수유를 하던
뙈기밭 너럭바위처럼.
열여덟 시집살이
설운 눈물 뚝뚝 받아낸
배추밭 그 이랑에
할머니를 모셔놓고
해마다 씨를 뿌리고
두엄 치신 어머니.
사람이 빠져나가면
그림자도 따라가는데
할머니는 엄마 밭에
바위로 앉으셔서
속 알이 꽉 찬 배추를 다섯이나 주셨다. /김진길
언제 봐도 넉넉한 너럭바위. 그 품에 사람들을 앉히면 밥도 술도 웃음도 두레반 같은 맛을 냈다. 지나는 길손과 바람과 햇볕들 다 들여앉히던 바위. 그 모습이 똑 마흔쯤은 훌쩍 넘긴 어머니며 속 꽉 찬 가을배추같이 푼푼하다.
김장이 겨울 농사이던 시절엔 배추가 집집이 산더미처럼 쌓이곤 했다. 그것을 절이고 다듬고 끓여서 식구의 밥상을 차려낸 어머니들. '속 알이 꽉' 차도록 '새끼줄' 동이는 뒷모습과 배추는 어쩜 그리도 닮았던지! 그 곁을 지날 때면 엉덩이가 덩달아 둥글어지는 느낌이었다. 배춧국 냄새가 저녁 길을 구수하게 당기는 '서릿발'도 허연 나날….//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