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6년 퇴계 선생이 박순(朴淳)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중 한 대목이 이렇다.
"홀로 바둑 두는 자를 못 보았소? 한 수만 잘못 두면 한 판 전체를 망치고 말지요. (중략) 내가 늘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기묘년에 영수로 있던 사람이 도를 배워 미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급작스레 큰 이름을 얻자 갑자기 경제(經濟)로 자임하였지요. 임금께서 그 명성을 좋아하고 나무람을 후하게 했으니, 이것이 이미 헛수를 두어 패배를 취한(虛著取敗·허착취패) 길이었던 셈입니다. 게다가 신진 중에 일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어지러이 부추기는 통에 실패 형세를 재촉하고 말았지요."
바둑에서 한 수의 실착은 치명적이다.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려 했다가 오히려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괜찮겠지 방심하다가 대마를 죽인다. 일파만파로 걷잡을 수 없게 되어 자멸한다.
편지에서 퇴계가 조광조(趙光祖)를 평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는 아직 학문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레 큰 명성을 얻었다. 게다가 의욕만 앞선 신진들이 공연한 일을 만들고 모험을 부추기는 통에 결국 일이 참혹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실착 한 번이 치명적 패배를 부른다. 잘나갈 때 방심하지 말고 삼가고 또 삼가는 것이 옳다.
1795년 금정찰방으로 쫓겨나 있던 다산이 이 편지를 읽고 이런 소감을 덧붙였다. "이 한 대목이야말로 바로 선생의 평생 출처가 말미암은 바의 지점이다." 잘나간다고 교만 떨지 않고 더욱 삼간다. 역경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사람들은 반대로 한다. 임금이 미워하는데 아첨으로 용납되려 하고, 조정이 참소하는데 논박하여 나아가려 하며, 백성의 원망도 아랑곳하지 않고 임금을 속여 지위를 굳히려 든다. 그러다가 권세가 떠나고 운수가 다하면 허물과 재앙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난다. 그리하여 일곱 자 몸뚱이를 망치고 만다.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에 나온다.
잘나가다가 단 한 번 패착으로 판을 망치고 마는 사람이 많다. 감당하지 못할 이름과 지위는 재앙에 더 가깝다. 밖으로 내보이기보다 안으로 감추는 일이 더 급하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