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許筠·1569~1618)은 미식가였다. 어려서부터 사방의 별미를 많이 먹었고 커서도 갖가지 산해진미를 찾아다니며 맛봤다. 그는 1610년 과거 시험 채점 부정에 연루되어 전라도 함열 땅에 유배 갔다. 유배지의 밥상에는 상한 생선 아니면 감자나 들미나리가 올라왔다. 그마저도 귀해 주린 배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그런 밤이면 그는 책상에 오도카니 앉아서 지난날 물리도록 먹었던 귀한 음식에 관한 기억을 하나씩 떠올렸다. 떡과 과실, 고기와 수산물, 그리고 채소에 이르기까지 종류별로 적어 나갔다.
그것이 맛있었지. 이건 더 기가 막혔어. 이렇게 하나하나 적어가는 동안 무려 125항목이 채워졌다. 입맛에 대한 기억을 호명하는 사이 그는 시장기를 잊었고 책이 완성되자 유배에서 풀려났다. 이 책 제목이 '도문대작(屠門大嚼)'이다. 위나라 조식(曹植)이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에서 "푸줏간 앞을 지나며 크게 씹는 시늉을 함은 고기를 비록 못 얻어도 귀하고 또 마음에 통쾌해서다(過屠門而大嚼, 雖不得肉, 貴且快意)"라고 한 데서 따왔다. 흉내만으로 자족하는 것을 비유할 때 많이 쓰는 표현이다.
책 속의 항목은 각 지방 특산물로 가득해서 해당 지역에서 들으면 반색할 내용이 많다. 강릉 방풍죽(防風粥)은 한 번 먹으면 사흘 동안 향기가 가시지 않는다. 전주에서만 만드는 백산자(白散子), 안동의 다식과 밀양·상주의 밤 다식, 여주 사람이 잘 만든다는 차수(叉手) 떡 같은 목록이 눈길을 끈다. 과일로는 정선군의 금색 배와 곡산·이천 특산의 대숙배[大熟梨], 온양 조홍시(早紅枾)와 남양 각시(角枾), 지리산 먹감을 특기했다. 수박은 동과처럼 길쭉한 충주 것을 상품으로 쳤고 모과는 예천산을 꼽았다. 대추 하면 보은 대추요 자두는 삼척과 울진 것을 높였다. 호남의 죽순 절임과 나주 무, 제주 표고와 삼척 올미역, 순천 작설차와 경주 약밥도 허균의 입맛을 다시게 했다.
입맛의 기억은 강렬하다. 특정 장소의 추억을 동반한다. 배고픈 유배지의 거처에서 하나하나 호명해 복원한 별미 목록을 보며 역경 앞에서 지녀야 할 삶의 어떤 태도를 떠올려 본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