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4년 5월 영조가 경연(經筵)에서 신하들에게 말했다. "공정해도 현명치 않으면 어진 이를 어리석다 하고 어리석은 자를 어질다 하게 된다. 현명하나 공정치 않으면 비록 그가 어진 줄 알아도 능히 쓰지 않고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능히 버리지 못한다. 쓰고 버림의 분별이 또한 어렵지 아니한가?(公而不明, 則以賢爲愚, 以愚爲賢. 明而不公, 則雖知其賢, 不能用, 雖知其愚, 不能舍. 用舍之分, 不亦難哉?)" 서명응(徐命膺)이 엮은 '영종대왕행장(英宗大王行狀)' 중에 나온다.
공정함만 따질 뿐 현명함이 결여된 것이 공이불명(公而不明)이요, 현명하나 공정함을 잃게 되면 명이불공(明而不公)이다. 공(公)은 치우치지 않는 마음이다. 공평하고 공정하려면 밝은 판단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현명함과 어리석음의 분별이 사라져 뒤죽박죽이 된다. 공정함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를 주는 데 있지 않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어리석은 사람은 쓰지 않는 데서 성취된다. 반대로 현명한 판단력을 갖추고도 공정함을 잃으면 사사로움이 개재되어 능력을 알고도 쓰지 않고 어리석은 줄 알면서 내치지 못한다. 하나는 난감하고 하나는 곤란하다.
기윤(紀昀)의 "아법집(我法集)"에도 '공이불명(公而不明)'이란 항목이 실려 있어 살펴보니 시 한 수를 소개한 후 이런 설명을 달았다. "공정하면 마땅히 현명함이 생겨나야 하건만 어이해 도리어 현명치 못한 데로 돌아가고 말았던가? 이는 바로 스스로 자신이 공정하다 믿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고 혐의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꼼꼼하게 점검하지 않아서일 뿐이다.(公當生明, 何以反歸不明. 正緣自是其公, 心無所愧怍, 無所嫌疑. 故不詳悉檢點耳.)"
나는 떳떳하다. 아무 사심이 없다. 이 같은 확신이 자신의 행동에 당당함을 심어준 것까지는 좋은데 자칫 점검의 내실을 놓치게 되는 것은 아쉽다. 공정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현명치 못한 행동, 실상을 잘 알면서도 한쪽만 치우쳐 편드는 목소리가 늘 너무 높아 걱정이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