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맹산 (誓海盟山)
혼자 다락 위에 기대 나라의 형세를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아침 이슬 같다. 안에는 계책을 결단할 동량의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다. 종묘사직이 끝내 어디에 이를지 심사가 번잡하고 어지러워 온종일 엎치락뒤치락했다.' 충무공 '난중일기' 중 1595년 7월 1일 기록이다.
그는 자주 악몽에 시달리고 불면에 괴로워했다. 소화기가 안 좋았던 듯 토사곽란을 달고 살았다. 4수 남은 시 속에서도 그는 늘 잠을 못 이룬다. '한산도야음(閑山島夜吟)'에서는 "근심겨운 마음에 뒤척이는 밤, 새벽 달빛 활과 칼을 비추는구나(憂心輾轉夜, 殘月照弓刀)"라 했고, '무제6운(無題六韻)'에서는 "우수수 비바람 몰아치는 밤, 또랑또랑 잠조차 이루지 못해. 아픔 품어 마치도 간담 꺾인 듯, 상심하니 칼로 살을 가르는 듯해. 산하는 참담한 빛을 띠었고, 고기와 새 그마저 슬픈 노래뿐. 나라엔 창황한 형세 있건만, 이 위기 돌이킬 인재가 없다. 회복함 제갈량을 그리워하고, 내달림 곽자의를 사모하노라. 여러 해 방비의 계책 세워도, 이제 와 성군을 속이었구나(蕭蕭風雨夜, 耿耿不寐時. 懷痛如摧膽, 傷心似割肌. 山河猶帶慘, 魚鳥亦吟悲. 國有蒼黃勢, 人無任轉危. 恢復思諸葛, 長驅慕子儀. 經年防備策, 今作聖君欺)"라는 탄식을 삼켰다.
조경남(趙慶男)이 '난중잡록(亂中雜錄)'에서 충무공이 한산도에서 읊은 20운의 시 중 단지 남은 한 연으로 소개한 구절은 이렇다. "바다에 맹서하니 어룡이 꿈틀대고, 산에 다짐하자 초목이 알아듣네(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 대체 무엇을 맹서했기에 초목 어룡조차 격동되어 대답했던가? 공이 자신의 칼에 써서 새긴 검명(劒銘)에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서를 하니, 산하조차 낯빛이 움직이누나(三尺誓天, 山河動色)"라 했고, 그 맹서의 내용은 다른 칼에 새긴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매, 산하가 그 피로 물들어지리(一揮掃蕩, 血染山河)"에 담겨 있다. 충무공은 우리에게 피 끓는 이름이다. 영화 '명량'이 한국 영화사 기록을 날마다 갈아치우는 모양이다. 공에게 부끄럽지 않을 날을 기다린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